토끼전 외



겨울방학 동안 집안에만 머무는 우리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동화책이다. 우리 고전 전래동화에서부터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창작동화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초등학교 저학년용 동화책을 소개한다

▲ 토끼전
▲ 토끼전
◇토끼전/김영미 지음/이광익 그림/보리/116쪽/1만2천 원

‘토끼전’은 지은이와 지은 때가 뚜렷하지 않은 옛이야기다. 자라의 꾐에 빠져 용궁에 갔다가 죽을 고비를 맞은 토끼가 꾀를 내 살아 돌아온다는 이 이야기는 동물을 사람에 빗대어 쓴 우리나라 대표 우화소설이다.

‘토끼전’은 누구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읽는 느낌이 달라진다. 용왕께 충성을 다하는 자라를 중심으로 보는 것과, 권력자인 용왕과 용궁 신하들을 놀려 주는 토끼를 중심으로 보는 것, 이 두 가지다.

우화소설은 풍자성이 짙어 이야기 속에 여러 장치들을 숨겨 놓는다. 그래서 읽는 이들이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약자들이 겪는 깊은 아픔에 공감을 느끼기도 한다.

‘토끼전’에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에는 풍자성이 담겨 있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다른 짐승 목숨을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용왕. 또 높은 이한테 충성하려고 다른 짐승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자라. 평소 업신여기던 자라가 높은 벼슬을 받자 배 아파하는 다른 신하들이 다 그렇다.

어쩌면 옛 백성들은 썩은 조정을 병든 용왕에 빗대어 나타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 병을 고치려는 욕심에만 사로잡혀 백성들을 속이고 희생시키는 것을 쉽게 여기는 용왕과 신하들이 비단 이야기 속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위기에 놓인 토끼가 꾀로써 자기 목숨을 지키고 상대를 놀려 주는 이야기에서 힘없는 자기 처지를 생각하며 더 큰 통쾌함을 맛봤을 것이다.

첫 장을 펼치면 흥겹게 놀아서 쌓인 쓰레기 더미와 그 옆에 앓아누운 용왕의 모습이 펼쳐진다. 용왕은 앓아누웠는데 걱정스럽기는 커녕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용왕이 어린아이마냥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다. 죽게 생겼다니 용왕으로서 체통이고 뭐고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과장해서 그려 낸 것 일테다. 화가 이광익은 이렇게 우화소설이 가진 풍자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과장해서 표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감동이 더욱 풍성해졌다.

▲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신지영 지음/최현묵 그림/서유재/144쪽/1만2천 원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아관파천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소년과 소녀의 꿈을 향한 도전과 우정을 그린 창작동화다.

소년 복남과 소녀 윤의 시선으로 개화기 조선을 그린 역사 동화다. 복남은 비록 마을의 노비인 고지기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불평등한 신분제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어느 날 황실과 관련한 중요한 서신을 전하는 심부름을 우연히 맡게 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에 더욱 용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수방도가의 물지게 대회에 참가하러 길을 떠난다. 한편 윤은 한양에서도 내로라하는 집안인 김 대감의 딸로 이화학당에 다니고 싶지만 완고한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공부가 하고 싶은 윤은 아버지와 대립하고 그런 윤을 뜻밖에도 어머니가 응원한다.

앞뒤로 뒤집어 읽으면서 복남과 윤이 어떻게 스치고 만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찾아보는 재미까지 더한 신지영 작가의 역사 동화다.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이기도 한 이용익과 김란사와의 만남을 통해 두 주인공이 각각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외세의 간섭으로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주인공들이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로 관심을 확장해 가는 변화가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섬세하게 담겼다.

이 책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아관파천의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소년 소녀의 눈에 비친 당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덕이네 사당패의 마당극으로 재연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당시의 조선인의 울분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친러 친일로 나눠 싸우는 벼슬아치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복남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교과서로 만난 딱딱하기만 했던 역사를 생각하고 질문하는 역사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해 그 시대, 수많은 복남과 윤 들이 어떻게 의병과 독립운동가가 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게 됐는지 상상하며 자기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
▲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정임조 지음/이상열 그림/동쪽나라/114쪽/1만2천 원

동화작가 정임조의 단편동화집이다. 거의 5년 만에 내놓는 책이다. 도시와 시골. 산과 바다, 어른과 아이들을 껴안고 사는 동안 만난 놀랍고 깜찍하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동화로 써내려갔다. 그렇게 써온 단편동화 ‘래고라는 이름의 고래’, ‘할머니는 치매 중’, ‘신갈나무 도토리 가지가 댕강!’ 등 총 8편의 단편들이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라는 책 제목 안에 담겨 있다. 역사, 환경, 가족,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 이야기들이 마치 한 줄기에 다섯 색 꽃이 피는 울산동백처럼 다양하게 담겼다.

이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아름드리 소나무 허리춤을 도려내어 송탄유를 채취한 수탈의 흔적을 보고 쓴 판타지 동화이다.

주인공은 어느날 엄마와 두 아름쯤 되는 소나무 앞에 멈춰섰다. 소나무 허리쯤에 껍질이 벗겨져 있었는데 움푹 패여 있다고 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빗금도 그어져 있었다. 나무가 사람이라면 피가 엄청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있는 큰 소나무들은 모두 비슷한 생채기를 갖고 있었다.

그 소나무 앞에 안내판에는 일제 감정기 일본인들이 송탄유를 채취한 흔적이라는 안내문구가 있었다. 그 소나무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라고 인사하는 아이는 주인공이자 곧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뭉클하게 읽힌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대왕암’이 당선돼 아동문학을 시작한 작가는 동화와 동시를 쓰는 행복을 어디에도 견줄 수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동화 속에 우리가 몰랐던 소중한 이야기, 작지만 큰 의미가 깃든 이야기, 사랑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며 그래서 동화가 무겁거나 어렵게 읽히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다. 그래도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동화로 깜짝 놀라거나 따뜻해 지기를 소망한다. 딱 잘라 뭐라 말하기 어렵더라도 한 가지가 마음에 날아들어 콕 박힌다면 그걸로 족하다면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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