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무슨 죄”…수개월째 소음 시위에도 대구 지자체 속수무책

발행일 2021-01-26 17:26: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구 중구청·동구청·서구청 앞 수개월째 소음 시위

허술한 집시법 탓 처벌 사실상 불가능, 주민 고통 호소

26일 동구청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구청 앞에서 수개월째 열리는 소음 집회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1. 26일 오전 8시30분 대구 서구청 일대에 음산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달째 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이 튼 노래다. 장송곡과 함께 매일 출근하는 공무원들은 이제 퇴근해서도 귓가에 맴도는 장송곡 탓에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2. 26일 동구청 앞은 수십 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청 앞에서 7개월째 극심한 소음을 동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 표현이다. 매일 오전 8시만 되면 시작되는 소음은 공무원들이 퇴근하는 오후 6~7시가 돼야 끝난다. 최근에는 오후 10시 넘어 확성기 방송을 틀어 화가 난 주민이 속옷 차림으로 쫓아 나오는 사태도 벌어졌다.

대구 지방자치단체들이 청사 앞 ‘소음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구 전역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발생한 철거민들이 구청 앞에 모여 수개월째 마이크와 확성기 등으로 극심한 소음을 유발하고 있어서다.

26일 대구 8개 구·군청에 따르면 현재 중구청, 동구청, 서구청, 북구청, 달서구청 앞에서 매일 1인 혹은 소규모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이중 확성기와 마이크 사용 등 소음을 동반한 시위가 진행되는 곳은 중·동·서구청 3곳이다.

이들은 대부분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던 세입자 및 상인으로 전국철거민연합회 소속이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법적인 부분으로는 보상받기 힘들어지자 마지막 수단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소음 시위로 구청 공무원과 민원인은 물론 주변 상인, 인근 거주자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동구청 인근 주민들은 최근 한 달간 40여 차례 시위 소음 관련 민원을 넣었다. 서구청에서도 최근 장송곡 관련 민원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른 구청의 행정력 낭비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소음 수준 측정과 돌발 상황 대비를 위해 매일 3~4명의 구청 공무원들이 구청 앞에서 대기해야 한다.

동구청의 경우 시위자가 매번 구청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탓에 입구에서 10여 명의 공무원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립하는 진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시위가 장기화되며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구청은 속수무책이다. 허술한 집시법 소음 규제 탓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기준 초과 소음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확성기 사용 중지 명령, 확성기 일시 보관 등 조치를 할 수 있다. 구청 등 관공서의 경우 오전 7시부터 해지기 전까지 75㏈의 소음이 허용된다.

불응 시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 벌금·구류·과태료 처분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근 1년간 대구지역에서 집회·시위 중 소음 관련 규정 위반으로 처분까지 이어진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보상받을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구청 앞에서 막무가내로 시위에 나선다”면서 “아무리 절박한 마음이라도 여러 시민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시위를 강행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대구 중구청 앞에서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박준혁 기자 parkjh@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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