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원의 망발을 지켜보면서

발행일 2021-01-26 14:17:25 댓글 1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지난 해 10월, 대선에 출마하려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한 의원이 총선에서 자기한테 진 주제에 환상 속에 살고 있다고 빈정거렸다. 그러한 내용의 신문기사를 보고 참 철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다시 유사한 기사가 떴다. 오 전 시장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총선에서 자기가 떨어트린 사실을 들먹이며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글을 SNS를 통해 내놨다. 남의 가슴에 두 번씩이나 비수를 꽂는 막말을 접하면서 참 독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정치적 계산으로 ‘조건부 정치’를 한다며 오 전 시장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그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무상급식을 두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대립하고 있던 상황에서 직접투표를 통해 서울시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자신의 주장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면 서울시장을 사퇴하겠다는 것,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 힘’에 입당 안하면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것,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차기 대선을 포기하겠다는 것 등을 적시하며 힐난했다.

그런 것들이 ‘조건부 정치’인지 모르겠지만 조건부라서 나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임기 중 무책임하게 중도 사퇴함으로써 보궐선거를 통해 유권자를 성가시게 하고 예산을 낭비하게 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조건부로 사퇴했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은 생뚱맞다. 무슨 일이든 인과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원인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선택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극히 일상적이다. 안 대표의 입당을 촉구하는 함의와 서울시장을 대선의 징검다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진의를 정작 몰랐던 건지, 모른 척했던 건지 불가사의다.

선거의 패배는 병가지상사이고 그 승패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진 않는다. 민심은 수시로 변하고 다수결이 정의나 진리를 판별해주진 않는다. 선거는 단지 민주주의의 유력한 도구로 가치를 가질 따름이고 절차적 정당성으로 실체적 정의를 대신할 뿐이다. 한 차례 당선됐다고 너무 자신만만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고 한 번 낙선했다고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도 없다. 이겼다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목이 날아가는 곳이 선거판이다. 겸손과 수분이 승자의 덕목이라면 희망과 용기는 살아남기 위한 패자의 요건이다.

선거에 패한 사람은 낙담한 나머지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린다. 주변 사람들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마냥 한심하기도 하다. 만사가 귀찮고 하고자하는 의욕마저 사라진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삶이 비참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한다. 승자가 패자를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일은 그러한 경험과 학습으로 형성된 배려다. 넘어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일은 미래의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보험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들의 전례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쓰라린 패배를 경험했지만 그 역경을 극복함으로써 큰 뜻을 이뤘다. 한번 패배했다고 환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패자부활을 부정하는 잘못된 태도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독하는 망언이다. 작은 도전의 실패를 이유로 큰 도전을 조롱하는 말은 인간의 도전정신을 폄훼하는 것이다.

승리에 취해 상대방을 안하무인 짓밟는 일은 하수의 하수다. 옹졸함이나 잔인함의 표출은 표를 까먹는 첩경이란 사실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깨친다. 속마음은 어떠할지 알 수 없지만 적나라한 적의를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는 건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안다. 상대를 비방하는 밑바탕에 건방과 오만이 도사리고 있고, 잘난 척 하는 언행은 인간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자극하는 법이다. 자기가 넘어트린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일은 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부메랑이다.

왜 얼마나 쓰러졌는지 비난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칭찬할 일이다. 청와대 후광에 힘입어 여당의 텃밭에서 공천을 받고 원내대표의 메가톤 급 지원사격으로 당선된 사람이 염하다 떨군 사람 모양 쓰러진 사람을 밟아 뭉개는 상식이하의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을 참고 있자니 머리가 뜨끈뜨끈하다. 재난지원금을 받아 쓴 일이 새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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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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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oo*****2021-01-27 10:02:30

    다음 국회의원 선거전에서 그 의원이 어떻게 되는지 꼭 지켜볼 사람들이 많아졌네요. 사람들이 늘 뒤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입으로 죄를 짓고 있으니, 세치혀가 무서운건가봐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