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정제된 문장들이 돋보이는 지역 시인들의 신간시집

대구·경북지역에는 유달리 시인들이 많다.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감히 시를 짓는다고 드러내 놓기 두려울 정도다. 입을 통해 세상에 내 놓는 말은 비록 투박할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섬세한 언어의 고결함을 품은 바지런한 지역 시인들의 창작물이 눈에 띈다.

◇세르반테스의 기막힌 연서/김태완 지음/서고/122쪽/9천 원

김태완 시인의 첫 시집 ‘세르반테스의 기막힌 연서’가 세상에 나왔다.

1996년 대구일보 문학상 시부문에서 ‘김홍도와 떠나는 가을여행’, 2017년 시문학에서 ‘바다 복사기’로 등단한 시인이 풀어놓은 재담의 2000년대적인 시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줄줄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쓰는 것과 유머와 슬픔을 버무려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한다.

시인 채인은 “그의 시를 읽노라면 수많은 철학적 사유가 우리들의 뇌혈관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삶의 상흔처럼 유영한다.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피어오르는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시라는 리듬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상에 말을 건넨다”고 했다.

쉰이 넘어 첫 시집을 낸다는 것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천명을 안다’는 의미일까? 쉰 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천명을 알 리가 없다. 더 열심히 느끼고 깨우쳐야 하는 배움의 나이다.

대구 출신인 그는 개성이 넘치는 대구산 시인들의 한 구석에 겨우 이름을 얹었다. 젊은 시절 그들의 시를 읽고 쓰며 시인을 꿈꿨다. 그리고 1989년 경북대에 입학해 문학 서클 ‘복현문우회’에서 시를 배웠다.

아이가 까치발 하고 벽장 안을 뒤집니다/하늘천 땅지하며 햇살이 글썽이고요/낮달 담벼락 아래 강아지풀 몇 무더기 말라있네요/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늘이 번져 오며는 어느덧 부는 바람 왕겨가 묻어나지요

대구일보 문학상에 출품한 그의 시 ‘김홍도와 떠나는 가을여행’ 중 일부분이다.

당시 심사를 담당한 신경림 선생은 이 시에 대해 “우리 시에서는 특이한 목소리여서 호감이 간다. 상도 밝고 선명하다”고 했다. 또 “특히 상이 여간만 아름답지 않아, 마치 익살스러운 풍속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시 하면 먼저 인상부터 가다듬고 보는 엄숙주의가 없는 점, 그리고 과감한 속담의 채용 등도 시를 활기차게 만든다”고 평했다.

◇수성못/이해리 지음/학이사/152쪽/1만 원

사랑아 언제나 그곳에 있거라/살다 지친 누가 오면/흐르다 지친 누가 오면/실실이 늘어진 버들가지 아래/말없이 젖는 사랑아

수성못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대구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휴식처다. 이 수성못을 노래한 이해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수성못’이 나왔다.

수성못 시인으로 불리는 시인이 평생을 살아온 대구가 예기치 못하게 코로나19에 집중 폭격을 맞은 지난 봄, 죄도 없이 폄훼당한 대구의 상처가 수성못의 수면 위에 어리는 듯해 그 불안하고 서러운 마음을 담아 쓴 시를 엮은 시집이다. ‘확진’, ‘답답’, ‘금빛 은행나무’ 등이 수록돼 있다.

2005년 첫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를 낸 작가는 이번 시집의 제목을 애초 ‘탑’으로 정하려 했다. 절터를 돌며 낡고 오래된 탑을 돌아보는 동안 우리 삶이 탑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낀 때문이란다.

탑에 전착해 연작시를 구상하던 중 예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을 맞아 집 근처 수성못을 둘러보는 시간을 많이 가진 작가는 불안하고 서러운 마음이 수성못에 대한 시를 쓰게 하고 제목도 ‘수성못’으로 바꾼 동기라는 이야기다.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시민 누구에게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정신적인 문화공간이 돼 온 수성못을 시제로 삼아 쓴 연작시가 실려 있다. 수성못을 예찬하기도 하고 수성못의 낭만을 노래하기도 하며, 역사적 현장성과 엮어 사유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시집은 수성못에 대한 시인의 사랑 고백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했다. 모든 문화는 지역성과 역사성에 더해 그것만의 고유성을 포함할 때 가장 의미 있는 문화의 꽃을 피운다. 시인의 연작시 수성못을 비롯한 일련의 시들이 그러하다.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의 시편들은 엇비슷한 수사나 다른 시인들의 빛나는 문구를 무허가로 가져와 짜 맞추거나 뻔한 상념으로 얼버무리는 피상적인 발상이 들어가지 않은 체험적 육성으로 읽히는 미학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감사하고 싶은 날/이창하 지음/황금알/136쪽/1만 원

시인 이창하의 시집 ‘감사하고 싶은 날’이 출간 됐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평화로운 일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서 얻은 아픔으로/입에서 배설되는 사나운 짐승의 DNA를/미처 몰아내지 못하고/내 눈에는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불거나,/주소가 불분명한 누군가를 향해/구취(口臭)를 뿌린 것에 대해/반성하는 날 (중략) 비로소/우리에서 빠져나온 동물들을/몰아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니/멀리/들판을 향해 검은 짐승들이/달려가고 있다.

이창하의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시 ‘이런 날은 감사하고 싶다’의 일부분이다. 시적 화자 ‘나’는 우선 반성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픔을 견뎌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의 입에서 사나운 짐승의 DNA가 배설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고, 내 눈에는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부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누군가를 향해 구취를 뿌린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원치 않던 ‘사나운 짐승의 DNA’나 ‘시베리아의 찬바람’ 또는 ‘구취’ 등을 발산한 ‘나’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자신의 불편한 언행을 반성하는 ‘나’는 용기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픔’을 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했던 불편한 언행을 ‘나’는 오염된 속으로 인식한다.

이창하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삶의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변화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진동하고,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벌어지며,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위치하는 흐름이다. 삶을 대조적인 양극 사이에서의 선택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삶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창하의 시가 그러하듯이 삶은 멈출 수 없는 사랑이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문학평론가 권온은 “이창하는 이번 시집에서 다양한 방향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억’, ‘관계’, ‘미’(美), ‘운명’, ‘사랑’, ‘가족’, ‘인간’ 등의 키워드로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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