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공유제는 빛 좋은 개살구다

발행일 2021-01-19 13:44:1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민주당은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성과가 좋은 기업들의 이익 일부를 갹출해 어려운 기업들에게 나눠주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득을 본 기업이 해를 입은 기업에게 적정부분을 나눠주자는 이야기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기해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는 충분히 보기 좋다.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합리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익공유제는 보기는 좋아도 맛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다.

한때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동반성장의 한 방법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적이 있다. 초과이익은 정상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이고 자본사용대가인 기대이익을 초과하는 순이익이다. 초과이익은 혁신과 위험부담, 공격적인 투자의 결과로 발생한다. 허나 초과이익은 지속적으로 유지·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경쟁에 의해 소멸된다. 기업혁신의 한시적 보상이자 과실인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는 이윤동기를 무력화시킬 따름이다.

굳이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면 초과이익을 계산해낸 후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초과이익은 학문적 개념이어서 실무적으로 정확한 금액을 산출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 발생원인을 정확히 따져서 그 기여자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일도 어렵다. 초과이익공유는 경제학의 기본가정 중의 하나인 이기심을 가볍게 보는 한계도 걸림돌이다. 게다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초과이익공유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라는 변종으로 다시 부활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도 초과이익공유제의 함정을 벗어나기 힘들다. 정책은 선의와 도덕성만으론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이해득실을 분리·추출해내고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래예측과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코로나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단정해 도덕적 책무를 부담시키는 일은 경제행위가 아니다. 현재 성공적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이익이 날 때 연구개발하고 재투자해야 살아남는다. 일시적으로 큰 이익이 났다고 나누라는 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지 말고 함께 망하자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 일을 하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소득에 비례해 세금을 낸다. 코로나로 인한 이득은 증세를 통해 정상적으로 국고로 환수된다. 그 돈으로 어려운 기업 구제하면 된다. 코로나 피해 기업은 세금을 덜 내기도 하겠지만 국가의 지원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익을 많이 낸 기업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반대급부는 덜 받는 구조다. 그러한 시스템이 양극화를 완화하는 자동조절장치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익을 나누라고 압박한다면 중첩적으로 불평등한 부담을 과하는 것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는 것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권력이 기업에게 이익을 나누라고 눈치를 준다면 기업가정신을 훼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손실이 생길 경우 보태주는 것도 아닌데 이익이 많다고 나눠야 한다면 도둑이나 강도와 다를 바 없다. 이익이 생기면 나누고 손해가 생기면 그만인 상황에서 누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혁신하고 투자하려 할 것인가.

사회주의 소련이 리베르만 이윤도입방식을 받아들인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지금 정도로 굴기한 것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이익사유화를 인정한 덕분이다. 사회주의국가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판국에 이익공유제라는 사회주의방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이다.

기존 시스템으로 역부족인 상황이라면 자율적인 기부를 활성화하는 방법이 맞는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은 그 인센티브다. 세상은 혼자 살수 없다. 그냥 놔둬도 이기적 동기에서 협력업체나 소비자를 돕는 법이다. 좋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가 존재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구매력이 풍부한 소비자가 존재해야 많이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팔을 비틀어 나눔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 소수 대기업의 이득을 다수 중소기업에게 나눠주는 이익공유제는 표퓰리즘 의혹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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