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은 지나치다

발행일 2021-01-12 15:19:4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국회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다. 사람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자 등 그 책임자(이하 사업주)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우는 법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막자는데 반대할 명분은 세상에 없다. 자기 사업장이나 협력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사업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업주의 도덕성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재해 발생이 영리추구라는 기업경영의 목적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현장을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이 영리추구 과정에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법도 그런 취지다.

산재 발생을 시장에 맡겨둘 경우, 재해를 무릅쓰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자를 혹사해서 얻는 이익증분이 재해 발생의 증가로 인한 손실증분과 일치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룰 것이다. 현실적으로 산재 감소로 인한 이득이 산업안전에 쓰는 비용보다 큰 범위에서 유인이 발생한다. 산재의 비효용을 증가시켜주면 그 방지를 위한 지출을 늘리게 된다는 결론이다. 산재 발생 시 사업주에게도 페널티를 주는 중대재해법은 산재의 비효용을 높이는 입법적 시도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확실히 산재가 줄 수 있다. 산재의 비효용이 엄청나게 커짐에 따라 그 예방을 위한 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용엔 근로시간 감소나 노동 강도 약화로 인한 생산력 감축과 기계화나 자동화를 통한 생력화 투자의 기회비용도 포함된다. 생산력 감축을 견뎌내지 못하거나 생력화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될 것이다.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실업이 증가하고 세금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재해가 없어지긴 할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은 사업주와 근로자가 윈·윈 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문제의 경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보고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기본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만 고려해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입안한다면 그것은 외눈박이 해결책이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의 입장만 반영한 절름발이 법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분배할 파이를 키우면서 상생하는 방법이다.

중대재해법은 무과실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 민법은 ‘과실 책임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고의가 있거나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한해 그 책임을 묻는다. 세상이 복잡다기해지면서 일상 속에 위험이 상존함에 따라 가해자의 과실여부를 묻지 않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책임주의가 각종 특별법에 의해 예외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무과실책임주의는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그 책임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제어하고 편안한 사회생활을 방해한다. 따라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무과실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산업재해 분야에 무과실책임을 도입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렇지만 산재보험을 활용하는 등 현 산재법 체계 내에서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거나 법인격을 가진 기업이 일정부분 책임을 부담하는 정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무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에게 형사상 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자는 선의가 아무리 가치 있다고 하더라도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있는 무과실의 사업주에게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입법은 불합리하고 가혹하다.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 과실이 없는 선량한 사업주를 처벌해야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법이 정당하다면 대형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책임져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에게 그 형사책임까지 물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는 건 지나친 억지논리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산재를 당해 인명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사업주를 처벌하는 입법은 성급하고 감정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을 한 입법이라면 최악의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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