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올해 복원 시작하는 임청각과 독립운동가 3대

발행일 2021-01-06 12:36: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안동 ‘임청각’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간 가옥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그보다 더 평가받고 그래야 마땅한 이유는 한 집안에서, 그것도 한 시대에 아홉 명이나 되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이란 점이다. 그곳에는 일제 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아픈 민족사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 집안의 가슴 저리게 하는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임청각이 일제에 의해 훼손된 지 80년 만인 올해부터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그동안 복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일제 강점기인 1942년 2월 부설된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로가 지난해 12월 16일 밤 열차 운행을 마지막으로 철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고 임청각 주인이었던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은 1911년 쉰이 넘은 나이에 고향 집 임청각을 떠나며 쓴 ‘거국음’(去國吟)이란 시에 당시의 심경을 남겨 놓았다. ‘보배로운 우리 강산 삼천리/ 조선 500년간 문화를 꽃피웠네/ 고향 동산 근심하지 말거라/ 태평한 훗날 다시 돌아와 머무르리다’

만주 땅 서간도로 떠나기로 결심한 선생은 임청각 사당에 올라가 신주와 조상들의 위패를 땅에 묻으며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고 망명의 각오를 다졌다 한다. 선생의 망명길에는 아들 이준형(1875~1942)과 손자 이병화(1906년~1952) 등 일가 수십 명이 동행했다.

그때부터 이미 100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임청각은 당당했던 99칸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일제에 의해 훼손된 모습 그대로 40여 칸만 남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근대사의 그늘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견뎌내며 살아야 했던 후손들의 아픔의 흔적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임청각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청각은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한 뒤 복원 작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 후 문화재청과 보훈청, 경북도, 안동시 등 관계 기관에서 복원 준비에 들어갔고, 2025년께 복원, 정비 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 항일 독립투쟁에 헌신한 3대

정통 유학자이고 대지주였던 이상룡 선생은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집을 떠나 은신하면서 1896년 가야산에 군사 진지를 구축해 의병 항전을 시도한다. 그러나 1904년의 러일전쟁마저 일제가 승리하자 국내에서의 의병 항쟁은 어렵다고 판단해 애국계몽운동으로 투쟁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1909년 의병 활동 관련 혐의로 일제에 의해 일시 구속됐다 풀려난 선생은 그해 3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결성해 시국 강연에 나서는 등 민중의 각성과 단결을 촉구하는 구국운동을 계속한다. 하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협회마저 해산당하자 국내에서의 항일투쟁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선생은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한 뒤 아들, 손자 등 가솔을 이끌고 서간도로 떠난다. 2월 서간도 회인현에 도착한 선생은 한·만 관계사를 연구, 집필하고 4월에는 유하현으로 옮겨 산중 노천대회에서 항일 민족독립운동의 방략과 진로를 천명한다. 선생이 당시 제시한 방략은 산업, 교육 우선주의와 군사 중심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해 만주에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1919년에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기지로 삼는다. 1919년 3·1운동이 있고 난 뒤에는 그해 5월, 만주 지역의 한인사회 자치기구인 한족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무장 항일투쟁단체이자 남만주 독립운동 총본영인 군정부(후에 서로군정서로 명칭 변경)의 총재로 추대된다.

만주 일대에서 군 간부 양성과 군사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지만, 선생은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한 나라에는 한 정부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때까지 흩어져있던 독립운동군 여러 조직을 통합, 대한통군부를 조직한다.

1924년 11월에는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에 참여했으며, 1925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취임한다. 그러나 임시정부 내 사상적 대립과 파쟁으로 정치적 경륜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하고 서간도로 다시 돌아가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운동에 힘을 쏟다 1932년 5월 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들인 동구 이준형 선생은 망명 전 안동에 있을 때부터 이미 민중 계몽운동에 앞장섰던 독립투사였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한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경학사 조직에 참여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힘썼으며 1919년 한족회, 1925년 군정부, 그리고 그 후 정의부 설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 아버지가 순국하자 안동에 돌아와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9월 2일 국운을 비관하며 자결했다.

손자 소파 이병화 선생은 1911년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망명해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다녔다. 1921년부터는 농민운동을 하다 무장 독립투쟁단체인 대한통의부에 가담했으며, 1924년에는 평북 청성진 일본 경찰주재소를 습격, 이 일로 1934년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

아버지,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이준형 선생과 이병화 선생의 항일 투쟁의 활동상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인지 이상룡 선생에 비해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후손들이 제기한 이상룡 선생의 서훈 등급 재심의 요구도 현행 상훈법에 걸려 여전히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어 하루빨리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일이다.

◆ 임청각의 역사와 복원 계획

임청각 복원 작업은 대통령의 언급 이후에야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2017년 9월 안동시와 문화재청, 보훈청, 고성 이씨 문중 등이 참여하는 ‘임청각 종합정비계획수립용역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그해 11월에는 추진위에서 정비 기준 시점과 범위를 설정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문화재청, 경북도, 안동시가 공동으로 ‘안동 임청각 복원, 정비 종합계획 최종보고회’를 열고 복원, 정비 작업의 일정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임청각은 2019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해 2025년께 마무리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7년간 280억 원이 투입된다.

지금까지 나온 임청각 복원 원칙은 중앙선 철로 설치 이전인 1941년 모습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1763년 문집 ‘허주유고’ 속에 나온 그림인 동호해람과 1940년 전후해 촬영된 사진, 지적도 등 고증이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허주유고는 18세기 임청각 주인이었던 허주 이종악(1706~1773년)이 남긴 문집이다.

또 정비될 임청각 주변에는 멸실된 분가(출가한 자식들의 가옥) 3동과 철로 개설로 훼손된 주변 지형과 수목, 나루터 등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될 계획이다.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복원, 정비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주변 토지 매입, 발굴조사 등에 주력하고, 철로 이설이 끝나는 2021년부터 훼손된 건물 복원, 지형과 경관 복원, 편의시설 설치 등 본격적인 정비 사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보물 제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안동시 임청각길 63)은 조선 중종 14년인 1519년 당시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집으로, 안동 고성 이씨의 종택이다. 고성 이씨는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이증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의 대표적 명문 사족 중 하나다.

임청각은 원래 99칸 가옥이었으나 일제가 불령선인(일제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던 말)이 다수 출생한 곳이라 하여 1942년 마당 한가운데로 철길을 내며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철거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군자정을 비롯해 안채, 중채, 행랑채, 사당 등 40여 칸이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메인사진-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임청각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지금의 임청각은, 1942년 2월 일제에 의해 마당 한가운데에 철로가 놓이고 전체 99칸 중 50여 칸이 철거되는 등 원래의 모습이 크게 훼손된 상태여서 그동안 복원 필요성이 계속해 제기됐다.연합뉴스
서브사진1-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앞에서 일제가 임청각 정기를 끓어내려 설치한 중앙선 철로의 방음벽 철거 행사가 열려 참석자들이 망치로 방음벽을 부수고 있다. 전날 밤 열차를 마지막으로 운행이 완전히 중단됨에 따라 임청각 앞 철로는 철거 작업이 시작된다.연합뉴스
서브사진2-복원될 임청각 조감도. 안동시청 제공
서브사진3-석주 이상룡 선생.국무령 이상룡기념사업회 제공
서브사진4-석주의 아들인 동구 이준형 선생이 남긴 유서.국무령 이상룡기념사업회 제공
서브사진5-석주의 손자인 소파 이병화 선생.국무령 이상룡기념사업회 제공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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