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그리고 사랑~

…토요일 오후, 나는 전근 간 선생님을 만나러가기 위해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제자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용돈까지 넉넉히 챙겨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화창한 주말이라 그가 출타하는 경우 숙박비도 여의치 않은 처지라 불안하긴 하다. 대처에 자취하는 여고생의 대책 없는 용기가 막상 일을 저질렀지만 버스가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그는 중3 때 읍내 중학교로 부임해온 총각선생님이었다. 나의 지인과 고향 불알친구인 인연으로 서로 관심을 가지고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방과 후 자전거를 타고 둘이 나란히 달린 일이 교내에 소문이 나고 그게 요상하게 확대 해석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시골의 입소문은 걷잡을 수 없다. 결국 그가 벽지로 쫓겨 갔다. 어느덧 목적지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당직 교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그와 찻집에서 재회하였다. 웬일이냐는 그의 다그침에 나는 펑펑 울었다. 찻집을 나서니 해가 서녘하늘을 기웃거렸다.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산등성이 너럭바위로 올라갔다.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별을 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어두워져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왔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하숙방에 도착했을 땐 어둠이 먹물처럼 내려앉았다. 담요를 깔고 벽에 기대어 나란히 앉았다. 그는 자작시를 낭송해주었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깍지를 낀 채 시를 감상했다. 나를 두고 떠날 때의 느낌을 시에 담았다고 했다. 그는 이부자리를 봐주곤 옆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베갯잇에 눈물을 적시며 온밤을 하얗게 새웠다. 이튿날 그는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차표와 용돈을 챙겨주었다. 어젯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이젠 나도 열아홉 살 처자라고 거세게 항변했다. 그는 모성의 속성은 기다림이라고 말해주었다. 내친 김에 그를 바짝 몰아붙였다. 그를 부르는 호칭도 선생님 대신 짧게 줄여 부를 수 있는 걸로 정해달라고. 그는 편지로 답장하겠다고 말했다. 편지보다 사람이 먼저 갈수도 있다면서.…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휴대폰이 없던 때다. 편지가 연인들의 주요 소통수단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음을 두고 애정을 가꿔가는 일은 어쩌면 운명적이다. 총각선생과 여고제자는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맺어지는 경우가 특히 많다. 남녀 간의 사랑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주위에서 반대하면 오히려 더 거세게 타오른다.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금기라는 사실이 오히려 불을 댕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기를 범하는 사연은 다들 절절하다. 허나 금기인 이유도 엄연히 가치가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스승과 제자의 사랑은 대개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 사랑을 정당화하려 한다. 허나 스승은 가르치는 지위에 있는 관계로 제자로부터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 반면 제자는 배우는 입장일 뿐더러 감상적이고 미성숙한 상태다. 스승과 제자라는 지위를 벗어날 때까지, 독자적으로 미래의 짝을 판단할 능력이 생길 만큼 성숙할 때까지, 그 결정을 유예해주는 배려는 충분히 이유 있다. 비록 두 사람의 사랑이 애절하고 진지하지만 선생님의 이성적 판단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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