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경제연구원 이부형 이사대우
▲ 현대경제연구원 이부형 이사대우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지난 주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쇼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호주 등을 15개국 정상들이 화상으로 진행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정상회의에서 참여국 간 자유무역협정 협의문 최종 서명이 이뤄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RCEP은 15개 참여국의 전체 인구와 무역, 명목 GDP 규모가 세계 전체의 30%를 차지해, 북미자유협정(NAFTA)과 EU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블록이다. RCEP은 2012년에 협상이 시작되자 마자 큰 이슈를 낳은 바 있는데, 인도의 불참이 아쉽지만 만 9년에 걸친 긴 협상 끝에 최종 타결 및 서명이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ASEAN 등과 맺은 기존 FTA가 업그레이드돼 시장개방이 확대되고, 활용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위기의 공동 극복은 물론이고 갈수록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에 경종을 울려 참여국들의 호혜적인 교류와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가장 큰 기대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 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연구기관들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상품관세감축효과만 0.5%의 GDP 상승효과가 있다고 하니, 정체된 잠재성장률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고민이 깊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크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끝내 인도가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섭섭한 부분이지만 말이다.

한편, RCEP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한·중·일 3국이 동시에 동일한 자유무역협정 틀 안에 들어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RCEP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왜냐하면 이번 RCEP을 계기로 2012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중·일 FTA 협상은 물론이고, 2003년부터 시작한 한·일 FTA나 중·일 FTA 등에 관한 상호 협의가 가속화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발효된 한·중 FTA의 업그레이드도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염려할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과 한·중·일 3국과의 관계를 전제로 생각해 본다면 RCEP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조 바이든 신행정부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에 참여하고 이에 동참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만일의 경우가 발생했을 때다.

표면적으로 보면 RCEP은 한·중·일 3국과 ASEAN 주요국들이 주도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 가는 중국이 주도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동맹국들과 함께 대중국 강경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 신행정부가 만에 하나 CPTPP에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 입장은 참으로 난처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과 남북경협이라는 매우 까다롭고도 중차대한 문제도 걸려있어서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RCEP 참여로 한국과 중국과의 FTA 효과를 누리게 돼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 견제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 졌다는 말이 나오는 등 RCEP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고 한다.

벌써부터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지만, 우리도 RCEP 후 대외 특히 대 미국 관계를 고려한 통상외교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후회하기 보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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