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X 外

책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그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책장 속 먼지 쌓인 책이면 어떠랴. 손 가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저만큼 더 멀어져 가는 가을을 음미하자. 새로 나온 소설 몇 권이면 더 바랄게 있을까.

▲ 바이러스X
▲ 바이러스X
◇바이러스X/김진명 지음/이타북스/324쪽/1만5천800원

김진명 작가의 장편소설 ‘바이러스 X’가 출간됐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치사율이 무려 59%에 이르는 조류독감이 2003년 동남아에서 발생해 잠복 중인 사실을 예로 들며 전 인류를 멸망시킬 최악의 바이러스 ‘X’의 출현이 임박했음을 경고한다.

또 작가는 전 세계가 달려들고 있지만 겨우 코로나19 백신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실을 들춰내며 바이러스와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인류가 체내에서만 바이러스와 싸우려 하는 어리석음을 통렬히 비판하며 신기원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재미교포 로비스트인 이정한과 한국인 병리학자 조연수의 활약을 줄거리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합성된 바이러스 ‘X’를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들을 너무나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끌어 바이러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반도체와 레이저를 통해 바이러스를 체외에서 인식함으로써 인류가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의학자와 생물학자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되고 정보통신계가 나서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김진명은 ‘작가의 말’을 통해 “바이러스는 네 종류의 염기가 한 줄로 이어진 약 3만 바이트의 데이터일 뿐”이라며 “현재의 정보통신 기술로 얼마든지 체외에서 바이러스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인식의 전환만 이루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손쉽게 이긴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인류의 나아갈 길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같이하고 싶다”며 “치명적 바이러스들이 불결한 환경에 노출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바이러스가 지구 어느 곳에서 생기든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파되는 걸 여실히 봤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열악한 지역의 환경을 외면한 채 우리 자신의 안전만 도모하는 이기적 행태로는 위험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붕괴와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 고양이 소개소
▲ 고양이 소개소
◇고양이 소개소/임두건 지음/복고기봉/280쪽/1만6천 원

인연의 무게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현대사회에서 인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소설 ‘고양이 소개소’가 출간됐다.

이 책은 결코 무겁거나 어렵지 않게 ‘고양이 소개소’라는 불가사의한 장소를 중심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사람은 물론이고, 작은 반려동물과의 인연도 사실은 시공을 초월해 한 땀 한 땀 인연의 붉은 실을 꿰어내듯 기적처럼 연결된 소중한 것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양이 소개소’가 있다.

‘고양이 소개소’는 고양이들의 의뢰를 받아 그들에게 알맞은 집사나 환경을 연결해주는 존재로, 고양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지만 반대로 인간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는 곳이기에 인간의 관점에선 어디에도 없는 신비로운 장소다.

이 책에 수록된 12가지 단편은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 인물 관계로 구성돼 있지만 모두 고양이 소개소를 통해 연결된 인연의 소중함을 조명하고 있다. 그중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거나 서로 유기적인 연결 관계를 갖고 있는 단편도 있어 12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고양이 소개소’라는 커다란 구심점 아래 하나의 장편처럼 이어지는 통일감을 주고 있다.

수록된 이야기들은 고양이와 인간의 사랑, 세상에 스친 인연의 무게, 그리고 생명의 존엄을 주제로 담고 있다. 비교적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야기의 근본에 깔린 주제의 따스한 온기는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위로를 전해준다.

작은 존재와의 인연도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소설 ‘고양이 소개소’는 반려자로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 읽고 난 후에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는, 몇 번을 더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눈물 나는 작품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나 기른 적이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아직 고양이와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봄의 신부
▲ 봄의 신부
◇봄의 신부/장정옥/학이사/304쪽/1만5천 원

소설집 ‘봄의 신부’가 출간됐다. 기습처럼 덮친 불행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미사곡이다.

천안함 사고나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등 시간이 흘러 더는 그들을 추억하지 않지만 한때 우리 곁에 머물며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살았던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에는 4편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1편이 담겨있다.

표제작으로 삼은 중편소설 ‘봄의 신부’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인간의 몸, 살에 대한 기억을 담은 중편소설이다. 화재참사라는 비극적 상황을 통해서 인간에게 죽음과 몸의 의미를 묻고 있다.

단편소설인 ‘물고기의 집’은 천안함 사고를 소설의 골격으로 삼았다. 동반 입대 한 외사촌형제 중 한 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던 부모는 물고기가 돼버린 아들을 위해 평생 가업으로 삼던 채낚기 어선을 물고기의 집으로 만들어 바다에 가라앉힌다.

‘꽃등불’은 강가 하천을 빌려 키운 작약 뿌리를 약재로 내다 파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4대강 공사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주인공은 작약꽃밭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어설픈 꽃 도둑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이어지는 단편소설 ‘환’은 각막을 받은 소녀의 얘기다. 천신만고 끝에 눈을 뜬 나는 병실 한편에 서 있는 운동복 차림의 남자를 만난다. 이후 그 남자가 수시로 찾아와 말을 붙이며 다가오는데, 그가 자신에게 각막을 준 사람이고, 떠나기 전에 그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마지막 단편 ‘내가 없는 그곳에’는 홀몸노인의 고독사를 담은 이야기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던 금자는 마을버스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고, 합의금을 세 번이나 받아낸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집은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적 죽음을 통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슬픈 사랑과 곡진한 삶을 담고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풀어내는 각양각색의 얘기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주제로 엮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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