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박채현 ‘발밤발밤 옛 돌담길’

발행일 2020-10-11 15:32: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려상 수상자 박채현
밤꽃이 피는 유월이다. 군위 한밤마을 밤나무도 한창 밤꽃 향기를 흩날린다. 밤이 크다고 해서 ‘한밤’인데, 밤보다는 돌담에 더 눈길이 간다. 멀리서 보면 담도 마치 알밤으로 쌓은 듯한 착각이 든다. 가벼운 행랑 하나 메고 미로처럼 마을을 돌고 도는 돌담길로 들어간다.

마을에는 유서 깊은 곳이 많다. 부계홍씨종택, 대청마루, 남천고택에서 옛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250년 동안 마을을 지킨 노거수 잣나무의 위용과 대율사 석불입상의 자비로운 미소를 만날 수도 있다. 목마르면 예주가에 잠깐 들러 잘 빚은 술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이를 찾아 골목을 걷다 보면 돌담의 매력에 빠져든다.

돌담에서 돌들은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아랫돌, 윗돌, 누름돌, 받침돌,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한다. 서열을 정해 줄을 세우지 않는다. 잘난 돌이 못난 돌을 이고 모난 돌이 둥근 돌을 받친다. 외모를 가리지 않는다. 잘났다고 튀어나오지도 않고 못났다고 숨지도 않는다. 다들 생긴 대로 서로를 이고 지고 업고 어깨를 맞대고 있다. 돌이라면 저마다 한몫을 하며 기다란 담을 이룬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과 담을 쌓은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인데, 줄을 긋기는 뭐해서 강가에 나가 돌멩이를 지고 왔다. 남정네는 지게에 지고 아낙은 머리에 이고 돌을 날랐을 거다. 불콰하게 흥이 나야 힘을 쓰지.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도 빠지지 않았을 거다. 돌 하나, 돌 둘, 돌 셋, 돌 넷…, 쌓다 보면 이웃과의 정은 돌담보다 더 높이 쌓였을 거다. 집은 등을 지고 있어도 마음은 마주 보았을 거다.

멋을 부릴 줄 알았으랴.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돌이지만, 할아버지가 손에 잡히는 대로 쌓고 손자가 덧쌓고 아랫대가 손을 보고 손때가 묻으면서 의미가 되었다. 눈이 하얗게 덮고 녹기를 거듭하고 지나가는 바람이 쓰다듬고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 돌담은 역사가 되었다. 이끼가 덮고 돌 틈으로 풀꽃이 뿌리를 내리고 담쟁이가 기어오르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담은 재료에 따라 독특한 멋을 낸다. 여러 가지 문양을 넣은 꽃담은 화려하고 반듯한 벽돌로 쌓은 담은 깎은 듯 단아하다. 흙으로 쌓은 토담은 푸석하면서도 질박하고 흙과 돌로 쌓은 토석담은 소탈하다. 잡목을 얼기설기 엮어 두른 울타리는 시원하면서 털털하다. 막돌로 쌓은 돌담은 야무지면서 투박하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돌담길은 ‘한밤돌담옛길’이다. 소 한 마리 지나갈 만큼 비좁으면서 집에서 집으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돌담은 투박한 막돌로 막 쌓아 모양새가 울퉁불퉁하다. 이것저것 요모조모 재지 않고 막 쌓아 성의 없는 것 같지만, 이래 봬도 허튼 솜씨로 층층이 쌓은 ‘허튼층쌓기’공법이다. 그래서 아래는 넓고 위는 다소 좁은데,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돌만 쌓여 있다면 그것은 성벽이다. 돌담 위로 흐드러진 밤꽃, 넌출대며 늘어지는 능소화, 둥근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는 해바라기, 한 발 두 발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돌과 돌 그 척박한 틈새에 뿌리를 내린 풀꽃들,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뾰족한 가시로 감시하는 엄나무, 주인이 이 집인지 저 집인지 모르게 돌담에 기댄 감나무…, 돌담은 이들과 한 묶음이 되어야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한옥은 반듯한 대로 초가는 찌그러진 대로.

돌담은 계절마다 운치가 다르다. 돌담 아래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개나리 가지마다 노란 눈이 트면 봄이다. 감꽃 떨어지면 봄이 간다. 돌담을 사이에 두고 이 집 접시꽃과 저 집 무궁화가 누가 더 예쁜지 다투어 피면 여름이다. 또르르또르르 귀뚜라미 소리 따라 돌담 위에 누런 호박과 박이 달덩이처럼 떠오르면 가을이다. 한해살이를 붉게 태운 담쟁이가 바짝 마른 채 벽화로 남으면 겨울이다.

돌담길을 발밤발밤 걷다 보면 세월 너머로 사라진 풍경도 보인다. 소 풀 먹이러 가는 삼돌이가 짝사랑하는 순이를 슬쩍 훔쳐보고, 동네 조무래기들이 모여 숨바꼭질하고,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한 어머니가 눈물 훔치며 돌아오고, 장에 간 아버지가 술에 취해 고등어 한 손 들고 흔들흔들 걸어오고, 볼일이 급한 할아버지가 재빨리 허리춤을 내렸다가 다시 올려 여미고 아무 짓 안 했다는 듯 헛기침하고, 돌담 모퉁이마다 옛사람의 모습이 환영처럼 아른거린다.

빈집에 들어가 밖을 내다본다. 안에서 보면 담 너머가 밖이다. 밖에서 보면 담 너머가 바깥이다. 가린 듯 보여주고 보여주는 듯 가린다. 막힘에서 트임을 보고 트임에서 막힘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려한 팔공산을 큰 배경으로 뒷집은 앞집의 뒤뜰이 되고 앞집은 뒷집의 앞뜰이 된다.

막힘과 트임의 미학,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담론이 아니다. 마음의 문이 열려있고, 너와 내가 몸을 낮추어 서로의 배경이 되면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이다. 이 어울림이 있으면 사람과 사람도 서로 싫증 나지 않는 풍경이 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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