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명절이 서글픈 사람들…한국게이츠 노동자들, 폐업 공장서 추석맞이

공장 폐업 세 달째, 여전히 공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
불 꺼진 공장에서 숙식 해결, 하루종일 집회활동 나서
추석 연휴도 집회활동 계속…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

폐업 통보된지 세 달째, 29일 찾은 대구 달성군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은 불이 전부 꺼져 적막감만 감돌았다.


“올 추석은 조상님께 제사를 못 드리게 됐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노동자 송해유(50·달성군)씨의 올 추석은 유난히 가슴이 시리다.

한국게이츠 폐업 사태가 벌어진 지 96일째.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는 24년차 직장인으로서, 아내와 두 아이의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아오던 송씨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송씨 등 25명의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불이 꺼진 공장에서 여전히 동료들과 함께 남아 있다. 이번 추석에도 귀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쓸쓸한 추석을 보내야 한다.

함께 투쟁했던 147명의 직원들은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 후 오랜 투쟁과 생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송씨와 그의 동료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공장 내부의 모습. 직원들은 팔레트 몇 개를 겹친 뒤 그 위에 깔린 이불 몇 개를 깔고 잠을 해결하고 있다.
직원들의 차량으로 그득하던 주차장과 족구장, 쏟아지는 물량들을 감당하지 못해 미어터지던 창고는 이젠 텅텅 비어 직원들의 임시 거처지로 전락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공장 한 모퉁이에서 삼시세끼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공기도 탁한 공장 안에서 팔레트 몇 개를 겹쳐 높이를 맞춘 후 대충 이불을 깔고 잠자리를 대신한다. 몇몇 직원들은 딱딱한 바닥과 앞으로 살아 갈 걱정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세 달이나 지났지만 송씨는 폐업 통보를 받았던 지난 6월26일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협력업체들로부터 들어온 물건들을 정리 중이었다. 갑작스레 폐업 통보를 받으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며 “마치 꿈꾸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아무런 조짐도 없었고, 직원들에게 한마디의 귀띔도 없이 느닷없이 폐업을 통보하는 회사가 대체 전 세계에 어디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불 꺼진 공장 안에서 기계들을 설명 중인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노동자 송해유(50·달성군)씨의 모습.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공장 안은 불이 꺼져 적막감만 가득하다.

예년 같았으면 추석 명절 물량 주문이 쇄도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기계들도, 직원들의 수다로 왁자지껄하던 식당의 분위기도 이젠 그리움 속의 추억이 됐다.

송씨를 비롯한 남은 직원들이 퇴직을 거부하고 끝까지 투쟁을 하고있는 이유는 ‘억울함’이다.

그는 “회사가 진정 어렵다면 경영 차원에서 폐업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 해 수십 억 흑자를 내면서도 폐업하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저는 사실 퇴직금 받고 나가면 끝이지만, 고작 입사한지 4~5년 밖에 안 되는 젊은 사원들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선배인 우리가 그들에게 힘이 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송씨에게 지금의 일상은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다. 하루 일과의 전부를 폐업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활동에 쏟고 있다.

추석을 이틀 앞둔 29일에도 오전 10시부터 대형마트 인근에 나가 시민들에게 부당함을 알렸다. 낮 12시부터는 울산에 내려가 현대차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이번 사태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송씨는 “다른 집회에 집중하기 위해 시청 앞 농성을 풀었더니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며 “대구시나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줬지만 지난 6월26일 이후 지금까지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이들의 활동은 추석 연휴 기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명절 연휴까지 반납한 직원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시내 등 사람들이 몰릴 곳에 나가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송씨는 “이번 사태는 해외 기업이 국내로 들어와 단물만 빼먹고 가버리는 전형적인 행태”라며 “앞으로도 우리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안을 꼭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며 “지난주 벌초를 다녀오며 어머니께 미리 추석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도 그저 힘내란 말만 하시더라”고 말하며 참아왔던 눈물을 훔쳤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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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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