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문화 정체성(文化 正體性)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같은 문화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을 통해 공유되고, 그 집단의 동질성을 확보함으로써 구성원 전체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고,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대구와 수성구는 문화사적으로 존재 의미가 우뚝한 도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챙겨야 마땅한 문화사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어렵사리 대구와 수성구를 찾은 방문객에게 자랑할 만한 소재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오는 10월16~18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될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에서 펼쳐진다. ‘수성특별전I’과 ‘수성특별전II’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내용의 영상 콘텐츠가 소개된다. 대구가 출판문화의 거점이며, 수성구는 출판의 기록성 덕분에 대구 정신이 태동된 곳이란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출판은 문화산업의 뿌리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출판은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고 공유하는 유력한 미디어였다. 영상이 주력 매체로 부각된 오늘날에도 출판시장은 위축됐지만 출판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대구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출판문화의 거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족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제작된 초조대장경 경판이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으며 당시 인쇄도 이뤄졌다. 지난 2011년 초조대장경 판각 1천년을 맞아 동화사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대구에 경상감영이 상시 설치되면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제작해 영남권 전역을 대상으로 영영본(嶺營本)을 펴냈다. 영조 때는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이 금서에서 해제된 ‘반계수록’을 출판해 전국에 배포했다. 그 당시 흔적이 동구 옻골마을 백불암 고택에 ‘반계수록 최초 교정 장소’란 안내문과 함께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문중과 사찰 등에서도 문집과 족보, 불경 등을 출판했다.

대구의 출판문화는 감영이 출판을 주도하다가 맥이 끊긴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시대 이후에도 계속됐다. 관영 출판이 왕성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늦었지만, 1900년대 초반부터 재선당서포와 광문사 등 상업출판사들이 방각본(坊刻本)을 펴내면서 민영 출판을 이어갔다. 또 현대에 들어와서도 북성로와 침산동 등지에서 기계산업이 왕성했던 대구는 인쇄기계 제작의 메카로 부각됐다. 기계식 인쇄기를 수집하고, 그 인쇄기로 책과 명함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에는 대구산(産)임을 증명하는 철제 라벨이 붙은 인쇄기가 상당수 소장돼 있다. 지금도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과 성서공단 출판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한 지역 단위 출판지원기관인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도 존재한다.

아날로그 출판문화의 결과물인 문집을 통해 확인된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은 조선 중기 문인인 계동 전경창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동에서 나고 자란 계동 선생은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뒤 자신의 집에 마련한 계동정사에서 대구 유림에 퇴계 성리학을 처음 전파하고,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건립한 뒤 후학을 양성해 대구를 인재의 도시로 만든 인물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집인 ‘계동집’에 수록된 가헌(家憲)을 통해 ‘내 방에는 문구, 거문고, 활만 두라’고 할 정도로 문무를 모두 중시한 선비였다. 이같은 사실은 계동집은 물론, 낙재 서사원과 모당 손처눌 등 제자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계동 선생의 가르침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구를 침범하자 낙재와 모당 등 제자들이 모두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게 만들었다. 이 정신은 항일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 초반 대한광복회과 의열단의 무장독립운동, 1940년대 반딧불 사건과 태극단 사건 등 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승한 대구 정신의 정점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2·28민주운동이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대구 정신의 뿌리를 계동 선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적 유행(Pandemic)으로 선포된 코로나19 방역조치 때문에 세계화 현상이 주춤하면서 국제교역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를 뜻하는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국내시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됐고, 온라인에서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지역성 또는 로컬리티(Locality) 개발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 됐다. 지역성은 문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대구와 수성구는 지금이라도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구호와 함께,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인 ‘글로컬’이란 용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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