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사과(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는 뜻)의 홍수 시대다. 뉴스에서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들의 사과를 접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될 정도다. 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과를 하는 이유가 대부분 막말을 했거나 말실수, 또는 의도적인 말실수 때문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정회 도중에 “죄 없는 사람 여럿 잡을 것 같다”며 야당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했다. “소설 쓰시네”에 이어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한 실언으로 또 논란이 된 셈이다. 추 장관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 정회 직후 서욱 국방부 장관의 “많이 불편하시죠?”라는 말에 “어이가 없다. 저 사람(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검사 안 하고 국회의원 하기를 참 잘했다”고 말했다.

속개된 회의에서 야당의원들의 이어지는 항의에 추 장관은 “유감스럽다.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사과하면서도 “원만한 회의의 진행을 위해”라는 전제를 달았다.

늘 뉴스에서 봐오던 풍경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사과를 하는데 있어서도 기술이 있고 방법이 있다. 여론을 돌이키려고 한 사과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사례들을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지난 4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수사 중인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과회견이 그랬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가 피해자의 반발을 샀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도 코로나19 확산 책임과 관련한 사과회견에서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고 말해 국민들의 화를 키웠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거나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는 말은 이제 유행어가 됐음직하다.

모두 잘못된 사과의 유형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그의 책 ‘사과에 대하여’에서 사과의 기본은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없는 사과는 시작부터 잘못된 사과라고 강조했다. 더 구체적인 사과의 방법으로는 ‘쿨하게 사과하라(김호/정재승)’는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①변명은 붙이지 않는다 ②‘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③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④개선의 의지나 보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⑤재발 방지를 약속해야한다 ⑥상대방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여섯 가지 사과의 방법이다.

사과가 뭔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이다. 변명 아닌 잘못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재발방지 약속, 용서를 비는 표현이 담겨야 진정성이 있는 사과인 것이다.

책임 회피성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로 여론이 악화된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태였다. 대한항공의 첫 사과문은 '잘못은 사무장이 한 것이며,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은 당연한 지적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비난의 역풍을 맞았다.

특히 진정성 있는 사과에 인색한 건 정치인들이다. 아마 사과 이후에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낼 용기조차도 없는 듯하다. 물론 사과하기 이전에 원인이 되는 막말부터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기대하기는 요원한 듯하다. 막말 소동을 겪은 후 이어지는 유감표명을 보면서 변명하기에만 급급한 내용이라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했던가. 공자도 논어에서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속이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 교언으로 위장한 막말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는 보기 어렵다. 사과를 하더라도 단서가 붙은 조건부 사과이다. 이런 사과는 오히려 오만하다.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여론이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주겠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서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품격 있는 사과를 보고 싶다. 사과의 기술과 방법도 제시했고 잘못 발표한 사과의 사례도 찾아봤다. 이젠 진정한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는 일만 남았다. 꼭 누구를 겨냥하고 한 말은 아니다. 다만, 사과인듯 하면서도 변명인듯한 표현으로 어물쩍 넘기려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사과는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진솔함과 겸손함, 두가지를 갖춘 사과에는 국민들도 마음을 연다.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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