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네거리 이면 도로엔 붉은 십자가가 다섯, 입구가 가리어진 모텔이 여남은 개// 세상은/ 사랑으로 넘쳐나고// 폐지 리어카는/ 비에 젖고

「정음과 작약 창간호」 (2017, 그루)

김연희 시인은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201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서예·문인화가이기도 하다. 시중유화, 화중유시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으며 예술혼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고 있는 시인이다.

우리 살고 있는 대구라는 큰 도시는 살기 좋은 곳이다. 특히 오래 전부터 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아 푸른 대구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 얼마 전 대구를 처음 방문한 이가 생각보다 교통도 편리하고 도심지가 깨끗해 아늑한 느낌을 안겨준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대구는 살기 좋은 곳이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상철인 3호선 하나만 보고도 서울에서 온 손님이 신기해하면서 한 번 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3호선은 실제로 아주 편리하고 미관상으로도 나쁘지 않다. 이젠 명물이 됐다. 안전하게 오고가는 것을 보면서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단시조 ‘세상은’은 세상살이의 모순을 조심스레 풍자하고 있다. 그 비유가 간명하면서도 적절해 읽는 맛을 더한다. 초장과 중장을 이어 붙인 장면 설정을 눈여겨볼 일이다. 대구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황금네거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그 이면 도로엔 붉은 십자가가 다섯이나 보인다고 하고 또한 입구가 가리어진 모텔이 여남은 개가 있다고 진술한다. 화자는 굳이 왜 이러한 장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보이는 대로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의도가 있다.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와 잠과 휴식의 공간인 모텔은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아가페와 에로스다. 어쨌거나 사랑이다.

그래서 화자는 종장 전구에서 세상은 사랑으로 넘쳐나고 있다고 뒤틀어서 노래한다. 정말 진정한 사랑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구현되고 있는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쉽게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타정신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화자의 시선은 어느 한 곳으로 꽂힌다. 즉 폐지 리어카가 비에 젖고 있는 광경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으로 넘쳐나고 있는 듯하지만, 마냥 비에 젖고 있는 폐지 리어카는 그 사랑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정황이다. 이것은 생생한 현장 비유다.

단시조 ‘세상은’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말은 이렇듯 의미심장하다. 입으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배려했으면 하는 간절한 뜻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을 크게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스크루지처럼 지독한 구두쇠도 종내 마음 문을 열고 크게 베푸는 것을 오래전 이야기 속에서 읽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시인은 시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구호나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고급한 언어로 직조된 적절한 비유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세상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어두운 길을 밝힐 수 있는 것이 비단 등불만은 아닌 것이다. 잘 빚어진 한 편의 소우주는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만구성비로 그 생명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많이 봐왔다. 일러 명작, 명시라는 작품들이다.

‘세상은’을 되풀이해서 음미해 보라. 어떤 삶을 살아가야 옳은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직시할 수 있지 않는가? 이정환(시조 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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