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사람을 하찮게 보거나 쉽게 생각할 때 ‘물로 보다’는 말로 표현한다. 낮은 데로 순응하며 흐르는 물의 부드러움만 보고 관용구로 쓰는 말이다. ‘물 건너가다’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이뤄지기 어렵게 된 상황을 말한다.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돈 혹은 물건을 함부로 쓰고 낭비하는 것은 ‘물 쓰듯 하다’로 표현한다. 요즘 정치권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물타기’는 본질을 외면하고 논점을 흐리는 행위를 말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특종을 놓쳤을 때 ‘물먹었다’고 한다. 태도가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음을 비꼬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이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물과 관련된 부정적인 관용구가 너무 많다. 1980년대 말에는 나약한 지도자라는 뜻으로 대통령에게까지 ‘물○○’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아마 사람들이 물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인 듯하다. 아니면 역행하지 않고 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조용한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로부터 물과 관련된 가르침을 설파한 경우가 많았다. 노자(老子)가 대표적이다. 노자는 도(道)의 세계를 물에서 찾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중국의 성인으로 불리는 노자가 쓴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중 하나가 물처럼 사는 것이라는 말일 게다.

그러면서 물이 가진 7가지 덕목을 이야기한다. 먼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의 덕과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의 덕이다. 혼탁한 물마저 받아주는 ‘포용력’,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바위마저 뚫는 ‘인내’, 폭포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유유히 흘러 끝내 바다를 이루는 ‘대의’가 나머지의 덕이다.

물처럼 유연하게 사람들을 포용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 용기있게 대처하라는 가르침이다. 낮은 데로 흐르는 물처럼 큰 뜻을 거스르지 않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물이 부드러움의 상징이라고 해서 절대로 허투루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아마 물처럼 무섭고, 물처럼 대단한 건 없을 듯하다. 아니다. 물은 늘 숨죽이고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한순간 깨어나 휘몰아치는 게 물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물에서 삶의 지혜를 깨우치는 말이 많다. 교수신문이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비유가 그 중 하나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말이다. 배는 물의 힘으로 떠있다. 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물이지만 물은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글귀다.

음미해보면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을 듯하다. 배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순항하면 물은 순응하며 그 배를 떠받든다. 하지만 배가 방향과 길을 잃으면 배를 전복시키는 것 또한 물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정권에서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올바른 정치에선 잘 따르던 국민들도 잘못하는 정치엔 반드시 저항을 해 정권마저 바꾼다는 얘기다.

잠시 눈을 현실로 돌려보자. 과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물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는가.

먼저, 지금 정치권은 온통 물타기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다. 옳은 일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군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위험한 여론몰이만 있을 뿐이다. 오직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논점을 흩트려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다. 이런 싸움은 국민들을 물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한심하게 말장난만 하고 있는지. 그러다보면 정작 중요한 화합은 물 건너가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 또한 떠내려가기 마련이다.

정치권만 그런 게 아니다. 현재 우리들의 삶은 어떤가. 노자의 도덕경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가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물처럼 낮은 자리보다는 좀 더 높은 자리를, 돌아가기 보다는 질러가기를, 상대를 포용하기보다 배척을, 부드러움보다 강함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선지 요즘 더욱 ‘상선약수’의 구체적 내용인 ‘물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다만 순리에 따라 흐르는 물길을 막는다면 언젠가는 둑은 터지게 마련이다. 물을 ‘물로 보지 말라’는 노자와 순자의 가르침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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