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가 기막히다/ 보내온 녹음 파일// 서울 촌놈 들으라고/ 물소리 풀벌레 소리// 묘하게/ 끼어든 맹꽁이/ 마디마디 절절한

「정음과 작약 창간호」(2017, 그루)

엄정화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7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그의 작품은 모던하다. 사물이나 세계에 대한 접근방식이 이채롭고,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말미암아 철학적이다. 인간의 내면을 향한 혹은 삶을 향한 이러한 예리한 시선은 개성적인 시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존재론적 성찰에까지 이른다. 시의 소재도 일반적이지 않다. 뜻밖의 대상을 포착해 체현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 결과물은 늘 우리의 삶과 깊이 접맥돼 있다.

우리는 날마다 숨 쉬며 살아간다. 말할 수 없는 이의 크신 손길을 통해 여전히 숨결이 허락됐기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날마다 거리에는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는 차들로 붐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므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한다. 살겠다는 소리, 살겠다는 몸짓, 발걸음, 손놀림들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복을 받았으니 부지런히 살아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려운 일들이 산 첩첩 물 첩첩이다. 비단 사람뿐이랴. 꽃과 풀과 나무, 여러 곤충과 새, 동물들도 저마다 살기 위해 가진 힘을 다한다. 이따금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몸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살겠다는 소리’는 그러한 생각을 담은 시편이다. 요즘은 휴대전화기로 온갖 자료를 쉽사리 주고받을 수 있다. 그만큼 편리해진 세상이다. 화자의 지인이 보내온 녹음 파일은 박자가 기막히다. 듣기 좋다는 뜻일 것이다. 서울 사람 들으라고 보내온 파일에는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섞여 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다른 소리도 들린다. 맹꽁이 울음이다.

맹꽁이는 양서류로 개구리목 맹꽁잇과에 속한 한 종인데 몸길이는 40㎜ 내외다. 뚱뚱하고 머리는 작으며 황색 바탕에 청색 또는 흑색의 무늬가 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릴 때면 울음주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요란하게 운다. 그 맹꽁이가 묘하게 끼어든 것이다. 그런데 맹꽁이 울음을 두고 화자는 마디마디 절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삶은 절박하고 절절한 것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간절함의 결핍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절절한 맹꽁이 울음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 물소리를 더욱 가까이 해야 하고, 풀벌레가 우는 들길이나 숲길을 걷는 여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며칠 전 늦은 저녁 무렵 교회당이 보이는 언덕바지 숲에서 매미울음과 함께 개구리 합창소리가 들렸다. 도심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을 울렸다.

약삭빠른 데라고는 전혀 없어 하는 짓이나 말이 답답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맹꽁이인데 앞으로는 이 말을 그런 뜻으로 써서는 안되겠다. 쟁기발개구리, 라고도 부르는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사라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마땅한데 사람을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겠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소중한 존재다. 흙이나 돌과 바위가 생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은 모두 미생물을 품고 있고 생명의 토대가 아닌가?

단시조 ‘살겠다는 소리’는 확대해서 생각하면 환경 문제도 내포돼 있다. 간절함과 더불어 살기 위해 이렇듯 갖은 정성을 다 쏟는다면 삶의 질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겠다는 소리’를 다시금 조용히 읊조려본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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