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그날은 언제일까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산삼이 돋아났다. 마른 솔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온 연초록 잎이 참 신기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씩 발생하던 때, 소나무가 우거진 앞마당을 묵혀두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어디서 산삼 씨를 구해 듬뿍 묻어두고 간 모양이다. 언젠가는 돋아날 것이라며 잔뜩 희망을 주더니 정말 기적이 자라기 시작이다. 날이 가고 해가 지나면 그것도 잘 자라서 언젠가는 5엽을 자랑하는 성숙한 산삼으로 당당히 커갈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에서는 일단 진정세로 들어선 모양새지만 수도권의 하루 확진자 숫자가 날마다 등락을 반복한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자가 격리 수칙을 준수하고 생활형 거리 두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접촉마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에 언제 어디서 다시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기에 닥치더라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함몰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5월 들어서부터 청첩장이 간간이 오기 시작이더니 6월이 되자 그간 미뤄둔 결혼식이 정말 봇물이 터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자 이곳저곳 가지 않으면 안 될 자리가 많아진다. 더러는 양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보내지만, 우리 아이의 결혼식을 찾아와 축하해주었던 이의 혼사에는 찾아가 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잠시라도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로서는 결혼식이라면 대개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일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지 않겠는가.

모처럼 붓 펜으로 정성 들여 쓴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결혼식장은 여느 때 보다 절차가 하나 더 생겼다. 비접촉 체온 측정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손 소독을 하고 들어간다. 식장으로 들어서니 그동안 만남이 없었던 오래된 옛 동료들도 간간이 눈에 뜨인다. 반가워서 얼싸안다가도 ‘거리 두기’를 외치며 화들짝 놀라 멀찍이 떨어진다. 코로나 걱정으로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참석 인원에 의외라는 기분이었다.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쓰고서 가능한 대화를 줄이고 테이블에 조용히 그러면서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앉아서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추세에 따라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신랑 아버지가 단상에 올랐다.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평생 고락을 함께 하는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신랑의 아버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성혼 선언문 낭독이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신랑 아버지가 머뭇대며 이야기를 잇는다. 자식 결혼식을 처음 하다 보니 혼인 서약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받지 않고 성혼 선언문을 먼저 낭독했다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터져 나오며 박수가 이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신랑과 신부에게 혼인 서약에 대한 맹세를 듣고서 재차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결혼식에서 작은 실수가 어쩌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아 그 결혼식을 더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책에서 본 한평생 시계만을 만들어 온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시계공 아버지가 자신의 일생에 마지막 작업으로 온 정성을 기울여 시계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된 시계를 아들에게 주었다. 초침은 금으로,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구리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 초침보다 시침이 금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했다. “초침이 없는 시간이 어디에 있겠느냐? 작은 것이 바로 되어 있어야 큰 것이 바로 가지 않겠느냐? 초침의 길이야말로 황금의 길이란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면서 말했다. “1초 1초를 아껴 살아야 1초가 세상을 변화시킨단다.”

언젠가는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 같다. 작은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큰길로 가는 길을 놓치고 말 수도 있을 터이다. 단 1초의 순간, 그 선택이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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