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한 때

▲ 시인 천영애
▲ 시인 천영애
사랑 이야기는 항상 진부하면서 항상 새롭고 감미롭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사랑만이 때로 우리를 구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해 여름에 시작된 사랑은 수십 번의 그해 여름이 지나가도 어떤 사람에게는 잊혀지지 않기도 한다. 그해 여름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윤석영 교수의 첫사랑을 찾아 나선 방송국 PD와 작가는 시골마을 수내리에 도착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윤 교수의 첫사랑이었던 정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이 먹빛으로 변하면서 대화를 회피한다. 무엇이 있음을 직감한 그들은 그 연인의 추억을 파헤쳐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그해 여름을 만난다.

시위와 민주인사들의 죽음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그해 여름, 아버지를 피해 농활을 갔던 부잣집 아들이었던 윤 교수는 시골에서도 여전히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이 무위도식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우연히 조그마한 시골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정인을 만나면서 시들하던 세상이 갑자기 바뀐다. 아버지가 월북하고 오래된 폐가에 남은 정인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고개를 숙인 채 도서관과 집만 오가는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윤 교수를 만나면서 그를 따라 도시로 가게 되는데 도시에서 그가 만난 것은 민주화의 거센 시위였다. 학우들이 시위를 하건 말건 관심도 없었던 윤 교수는 학교에 돌아오면서 시위에 적극 가담하게 되고 그를 기다리던 정인도 시위 가담자로 잡혀가게 된다.

가볍고도 가벼운 이 시대의 사랑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사랑은 수채화처럼 풋풋하지만 사랑이 가벼움이나 풋풋함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들의 사랑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못한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 가령 월북자의 딸이라거나 윤 교수가 부유한 집의 아들이라거나 젊은이들이 민주화의 거센 열풍에 몸을 던질 때라는 등의 부수적인 상황들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해 여름만의 상황만은 아니어서 이런 조건들은 지금도 여전히 청춘들의 사랑을 가로막고 그들을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인은 말한다. 혼자 기차를 타고 떠나면서 “다음엔 이 손 절대 놓지 말아요”라고.

윤 교수가 시위 도중 잡혀가서 정인에 대해 물을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을 예고한다. 윤 교수는 그 말 한 마디로 인해 평생을 그녀를 그리워하며 혼자 살게 되고 다음이라는 미래의 시간은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지만 그 말은 마치 예언처럼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던 것이다.

사랑이 너무나 순수하면 그 순수함 때문에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는 것이 순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 역시도 사는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순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바라보는 우리가 그 순수에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도 계산과 이해타산에 따라 정략처럼 이루어지는 시대, 순수해서 오히려 가슴 아픈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화면 위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15회 춘사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신인여우상, 음악상 등을 휩쓸었던 영화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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