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회고하는 자의 몫

▲ 시인 천영애
▲ 시인 천영애
전쟁은 끝나고 나면 언제나 영웅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그 영웅은 언제나 이름 없는 병사들보다는 장군들의 몫이었다. 시체도 찾지 못하고 즐비하게 죽어간 병사들은 제 무덤도 갖추지 못한 채 뼈와 살을 산야에 흩어놓았다.

가끔 병사들의 뼈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때가 많고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잊혀져 간다. 전쟁과 거리가 먼 세대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그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하여 역사는 언제나 기억의 산물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기억-그것은 회고하는 자의 몫이다. 우리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평균나이 17세, 훈련 기간은 단 2주, 272명의 학도병이 투입된 장사리 전투는 그 기억 가운데서도 가장 처절한 기억이다. 일본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우리는 장사리 전투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국가는 젊은이들을 총알 앞에 세웠다. 승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가끔 동해안을 돌다가 그 장사리 앞에 가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이다. 그때 전투에서 목숨을 바쳤던 그 또래 젊은이들이 해수욕을 하느라 붐비는 그 바닷가에서 한때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육이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은 그 바닷가에서 있었던 전투를 잊어가지만 우리 모두가, 특히 국가가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사리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전함이 마치 그들의 몸이 하나하나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픈 이유이다.

우리나라 어느 산천, 어느 바다에 젊은이들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고 처절한 육이오는 이제 서서히 잊혀져 간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내전의 기록만 남긴 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한국군은 북한군의 작전을 교란시키기 위해 장사상륙작전을 펼쳤다. 그 작전에 투입된 젊은이들은 낡은 총과 부족한 탄약을 지급받고 기꺼이 문산호에 올랐다. 그러나 그 상륙작전은 다음 날 거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가려 간간이 관심 있는 이들에게만 떠올려질 뿐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장사리가 있는 영덕은 한반도의 허리에 있는 지역으로 서해안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적의 교란작전으로는 최상의 작전이었다. 군번도 제대로 부여하지 않은 채 투입된 병사들이 죽어간 후 잊혀져 가던 장사상륙작전은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1980년 7월 ‘장사상륙작전 유격 동지회’를 구성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1997년 회원들이 장사리 바다에서 그때 좌초된 배를 발견하면서 역사는 실제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그들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한 영화 촬영은 장사리 해수욕장과 비슷하게 소나무가 많은 영덕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이루어졌다. 봄이면 아름다운 갯메꽃이 피어나는 고래불 해수욕장은 소나무 숲이 해안가로 길게 뻗어있고 수심이 얕아 영화촬영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때 희생된 학도병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도 없다는 말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떠올린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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