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가 파크골프장 잔디에 물을 뿌려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7일 오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에 있는 파크골프장에 고령소방서 다산119안전센터 소속 소방차 1대가 출동했다. 소방차는 30여분 간 소방호스를 이용해 골프장 잔디에 물을 뿌린 뒤 복귀했다.

소방차는 각종 화재, 산불 진화 등을 위해 24시간 비상대기하는 국가 비상장비다. 이날 파크골프를 치러 나온 이용객들도 갑작스런 소방차 출동을 보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이들은 “가뭄에 농작물이 말라 들어가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숨죽이고 있다. 잔디 관리를 위해 소방차를 동원한 것은 정신나간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봄부터 시작된 가뭄이 잔디 생육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방차가 골프장 잔디 물 주는데 동원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공과 사의 구분이 희미하던 몇십년 전 일같이 느껴진다.

이번 소방차 골프장 출동 사태는 크고 작은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명예에 누가 가는 일이다.

다산면의 파크골프장은 고령군에서 조성한 지역 중장년층을 위한 체육시설이다. 가뭄으로 잔디에 물을 줘야 할 일이 있으면 주로 이용하는 동호회원들이 나서거나, 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살수차 등을 동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방차가 나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지방의회 의원이 요청해 휴일 비상대기 중인 소방차를 동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당사자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소방차 출동 부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119안전센터 측은 정확한 경위를 얼버무리고 있다. 부탁을 받고 소방차를 출동시켰다면 지시한 사람의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원이라고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해이해진 공직 기강의 한 단면이다.

다산119안전센터에는 제대로 장비를 갖춘 소방차가 1대뿐이라고 한다. 소방차가 골프장으로 출동한 사이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면 골든 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편한 대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예전 관행이 아직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진상을 철저히 조사한 뒤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주민들로부터 “언제부터 소방차가 골프장 잔디에까지 출동했나”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유사한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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