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최서해

~빈궁은 사회주의로 이끄는 가이드~

…나는 간도로 가서 열심히 일했지만 극한상황에 내몰린다. 고심 끝에 가출을 결심한다. 평소 허심탄회하게 지내던 친구가 내 탈가를 한사코 만류한다. 내 결정에 반대하는 친구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을 밝힌다.

나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어머니와 아내를 거느리고 기회의 땅 간도에 왔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가족을 배불리 먹이는 한편 무지한 농민들을 가르쳐 이상촌을 건설해 보려는 작은 꿈이 있었다. 간도에 온지 한 달도 못 되어 그 꿈이 헛된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간도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지만 빈 땅이 없었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바닥났다.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별짓을 다했다. 구들 고치는 일을 했으나 신통찮았다. 삯김도 매고, 꼴도 베어 팔았다. 어머니와 아내는 삯방아를 찧거나 강가에 나가서 나무토막을 주웠다. 사랑하는 노모와 아내가 굶주리고 남의 멸시를 받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임신한 아내가 길거리에서 귤껍질을 주워 먹는 걸 보고 부끄럽고 안쓰러웠다. 나는 아내와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울었다. 그 해 가을, 나는 생선 장사를 하여 마련한 돈으로 콩 열 말을 사서 두부 장사를 시작하였다. 두부 장사도 쉽지 않았다. 두부 만들 때 쓸 땔감을 구하는 일도 큰일이었다. 산주 몰래 나무를 했다가 도벌 혐의로 붙잡혀서 매를 맞곤 했다. 두붓물이 곧잘 쉬었고 만들어 놓은 두부도 심심찮게 상했다. 두부 장사도 끝을 봤다. 겨울엔 아예 일자리가 없어졌다. 살이 터지고 뼈가 휘도록 일했지만 굶주림마저 면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세상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으나 세상 사람들은 나와 가족을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나는 벼랑 끝에 서있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침내 나는 부조리한 제도를 깨부수고 새 세상을 추구하는 단체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가족마저 버리고 탈가한 나의 사연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이 시대를 사는 민중의 의무를 이행하려 한다.…

세상의 부조리는 신화시대부터 인간의 주된 관심사였다. 신들의 노여움을 사 바위를 산위로 끝없이 밀어 올리는 시지프에서 부조리는 시작되었다.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인간의 노력과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되풀이되는 현실의 갈등을 카뮈는 부조리철학으로 승화시켰다. 마르크스는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이념의 새로운 틀을 제시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노정되어 사회갈등이 극심했던 시대는 일제 시대였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체제를 내놓고, 레닌이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킨 이후라는 점에서 그 때가 사회주의운동이 준동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춘 시기였다. 우리 문단에서 신경향파문학이 유행했던 시기도 그때였다. 「탈출기」는 그 당시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작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부조리한 제도 탓으로 보았다. 부조리한 제도를 타파할 이념체제의 선택은 시대적 과제였다. 의식 있는 지식인과 가난에 허덕이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단체를 만들어 판을 뒤집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죽기 살기로 노력했으나 먹고살기조차 힘들었던 주인공이 최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친구는 주인공을 설득할 논리를 알지 못했다. 사회주의는 빈부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진 틈새를 쐐기처럼 비집고 들어와 기존 틀을 깨어버린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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