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조명선



꽃 속을 걸어가는 한쪽 젖만 부푼 그녀/ 꼭지가 지기 전에/ 물고자란/ 포근한 곁



지난밤 은밀히 만나/ 오려낸 한쪽/ 반짝인다



살점에 묻은 슬픔 주무르고 핥으며/ 하부보다 더 짓누르는/ 이 낮고/ 긴 절차에도



오늘 밤 노둣돌 놓아/ 궁굴려야 할/ 저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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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선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93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하얀 몸살』과 《고요아침》에서 2017년 출간한 현대시조 100인선『3×4』가 있다. ‘목련’은 무장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꽃 속을 걸어가는 한쪽 젖만 부푼 그녀를 본다. 꼭지가 지기 전에 물고자란 포근한 곁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목련을 두고 지난밤 은밀히 만나 오려낸 한쪽이 반짝인다, 라고 진술한다. 또한 살점에 묻은 슬픔을 주무르고 핥으며 하부보다 더 짓누르는 이 낮고 긴 절차에도 오늘 밤 노둣돌 놓아 궁굴려야 할 저 허공을 보라고 독자에게 권유하고 있다. 목련의 만개는 눈부신 봄날의 선물이다. 젖은 모성의 상징으로서 생명의 경이다. 그런데 환한 목련에 비길 수 없는 한쪽 젖만 부푼 그녀가 꽃 속을 걸어가는 장면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봄날에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간절한 때다.

‘목련’은 연행갈이 즉 분행이 잦다. 시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잦은 연행갈이로 말미암아 자유시로 여길 수도 있지만, 시조를 쓰는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독자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길을 늘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기사형식을 선택할 수 있다. ‘목련’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 한해서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표기방식을 두고 조형미학이라고 부른다. 시는 눈으로 보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를 도외시할 수 없다. 형태가 만들어내는 언어미학이 중요한 까닭이다.

속에 들어 있는 말을 입 밖으로 일정량 이상 쏟아내지 않으면 병이 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발언이다. 할 말이 많다는 뜻이다. 그의 다른 작품 ‘악수’도 그렇다. 알고 있다, 끄떡없다, 걱정 마라, 수고해라와 같은 말이 ‘악수’에 녹아 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정담 없이 내미는 손바닥의 관계가 참 묘하다는 생각을 화자는 한다. 그래서 관계라니, 라는 어법을 활용했을 것이다. 곧 이어 순간의 기막힌 합방으로 말미암아 잠시 눈이 환해진다. 내밀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요즘은 인사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아직도 숙지지 않고 있는 코로나 때문이다. 그래서 악수를 마음대로 할 때가 그립기까지 하다.

시인은 몇 줄의 시를 매만지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담고자 애쓴다. 설렘으로 다시 시작하는 하루, 신록을 예찬하고 싶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도 하루하루가 축복의 나날임을 깨닫는다. 이제 건강한 여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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