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시간이 없다

발행일 2020-05-26 14:29:50 댓글 1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정의연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정의연의 비리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팔아 영달을 추구했다면 그분들을 두 번 팔아먹은 행위다. 전모를 명백히 밝히고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위안부 피해회복의 정의와 정의연의 비리는 별개라는 시각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 성역이라는 방어막을 걷어야 할 때다. 최근까지 불거진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두 정의연과 리더 개인의 비리에 집중되어 있다. 정의연은 피해회복의 정의와 그 필연성을 방패삼아 버티려 한다. 의혹 해소는 커녕 이상한 언행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남의 다리를 긁는다. 기가 찬다.

갈등의 배후에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있다는 전혀 엉뚱한 음모론을 내놓았다.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의혹을 뭉개려는 의도다. 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친일 세력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정의연이 그렇게 주장하는 입장을 이해할 순 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조직 운영과 각종 비리를 덮고 그냥 갈 수 있다는 인식은 오산이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이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한다.

백보를 양보하여 정의연에 대한 비리 폭로가 친일파의 공격이라는 점을 수용한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없다.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이 친일파든 친미파든 비리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일본을 좋아하든, 미국을 좋아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 의지다. 일본과 일본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일제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는 뜻은 아니다. 흘러간 역사를 두고 미래에 태어난 사람이 역사적 사실에 매여 연연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역사로 미래를 포박할 수는 없다. 이제 친일 프레임은 역사 속의 유물로 묻어둬야 할 때다.

이사가 불가능하다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서로 좋다. 감정이 남아있어도 큰 틀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략적 목적으로 정치권이 앞장서서 이웃나라와 불화를 조장하는 일은 한심한 자해 행위다. 자국제일주의란 발톱은 숨겨둬야 제 맛이다. 자국중심주의는 힘의 우위가 그 전제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이웃나라와 당당하게 서고 자국민의 생명과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부국강병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 피해회복은 화급하다. 피해회복은 일본의 사죄와 금전적 배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피해회복을 한꺼번에 해결하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단계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90대 고령이기 때문이다.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금전적 보상이 급선무다. 원인제공자 일본에서 돈을 충분히 받아내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면 국가가 선 보상을 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가 힘이 없어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국가가 힘이 없고 가난하면 여자와 애들이 개고생 하는 점은 만고의 진리다. 사적인 일로 침몰한 세월호 사건에 비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은 보다 명확하다. 세월호 유족에게 보상한 금액의 반에 반만 해줘도 지금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는 시간을 두고 끈기 있게 해결해나가야 할 장기과제다. 피해자에게 보상을 미리 대신 했다면 구상권이 발생함은 물론이다. 국가 차원에서 구상권 행사를 강력히 추진하기 곤란할 땐 시민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정의의 깃발아래 뭉친 자발적 모임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의 보상 여부나 생존 여부와 관계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위안부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위안부 합의로 받은 10억 엔을 모두 피해자에게 신속히 나눠주는 한편, 민간에선 반대운동을 강력히 전개하는 등 민관 양동작전도 유용한 선택지로 남아있다. 지금도 늦지 않다. 실리적 대응이 아쉽다.

시민단체라 하더라도 투명한 회계처리와 적법한 운영은 도덕적 규범을 넘어 법적인 의무다. 항상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타인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눈은 소금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탈선할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목적이 정의롭다고 법을 무시하라는 법은 없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시간이 없다. 피해자들의 옹색함과 불편함을 외면하는 것은 정의를 떠나 죄악이다. 돈부터 먼저 줘야 한다. 어떻게 처리하든지 그 뒤처리는 국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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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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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oo*****2020-06-16 16:23:39

    일본 놈들보다 더 나쁜 인간들~~ 할머니 등에 빨대를 꽂아 진액까지 빨아 제친 저들을 찍은 인간들은 사람도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