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의 기록

발행일 2020-05-25 16:23:5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서 ‘영남권 기록문화의 본산(本山)’으로서의 기능이 자연스레 수행되고 있다. 대구는 지난 2월18일부터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킨 불명예를 안게 됐다. 25일 0시 현재 대구의 누적 확진자는 6천874명으로, 전국 1만1천206명의 61.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출판사와 언론사, 각종 기관 및 단체가 앞 다퉈 대구의 코로나19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를 나타낸 표현이다. 유네스코가 지난 1995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록유산은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 또는 그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을 포괄한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도 2017년 포함됐다.

이 밖에도 대구가 기록문화의 중심지였던 근거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601년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은 경상감영에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중심으로 ‘영영본(嶺營本)’이 간행되면서 서울과 전주를 포함한 전국 3대 출판거점의 역할이 수행됐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매개물은 책판(冊版)이 유일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구가 영남권 전역에 지식과 정보를 전파한 기록문화의 본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경상감영의 관할지역을 현행 행정구역으로 살펴보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부산·울산·경남지역이 모두 포함된다.

대구지역 출판사인 학이사는 지난 4월 코로나19 대구시민의 기록인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에 이어, 5월 들어 대구 의료진의 기록인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를 잇따라 발간했다. 일반시민 51명과 의료진 35명이 각각 필진으로 참여한 이들 기록물은 원고료 없는 재능기부로 제작됐다. 판매 수익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한 기금으로 기탁될 예정이다. 시민들과 의료진이 대구지역 코로나19의 상황을 생생한 역사를 남기는 기록자로 기꺼이 나선 데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자발적인 행동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들 기록물은 출간된지 각각 며칠 지나지 않아 1천부씩 찍은 1쇄(刷)가 매진돼 2쇄를 간행한데 이어, 코로나19의 충격파가 우리나라만큼이나 큰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 대구시민의 기록은 벌써 일본어판(版) 전자책(e-book)으로 제작돼 일본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대구 의료진의 기록도 곧 일본어 번역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어판 제작은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쿠온출판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 코로나19 대구 기록 시리즈를 기획한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최근 아사히신문 및 NHK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일본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시리즈 3탄으로 대구 언론인들의 기록도 준비 중이다.

대구지역 문화단체와 문화기관에서도 코로나19 기록화 대열에 나섰다. 대구시인협회는 지난 3월 인터넷 카페에 ‘코로나19 대구경북’이란 코너를 만들어 지역 시인들의 시와 칼럼 등을 모으고 있다. 현재 작품 100여편이 실렸으며, 코로나19가 진정될 무렵에 책으로 출간된다. 대구문화재단은 지난 15일까지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2020 대구: 봄’이란 주제 아래 그림, 수필, 영상, 사진 등을 공모했다. 공모전에는 모두 500여건이 접수됐으며, 6월 중에 수상작품이 발표된 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전시회 등을 통해 전국에 공유될 예정이다.

대구시의사회는 코로나19 사태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백서(白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백서출간위원회를 구성한 대구시의사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백서에 담을 동영상과 사진, 수필 등을 공모하고 있다. 백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에 발간될 예정이다. 대구시의사회는 또 회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논문 40편을 엄선한 뒤 2021년 학술지 등재를 목표로 지원금도 후원한다.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가 대구에서 진행된 코로나19 사태의 매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땀 흘린 노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역할이기에 본 칼럼에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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