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발행일 2020-05-25 14:43: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랑비

하종오

자주 님께서는 어디론가 갔다 오시고, 그럴 적마다 봄빛은 누리에 더 들어찹니다. 이상합니다. 님께서 아니 계실 때, 개구리들이 나오고 수로에는 새끼 고기들이 몰려 놉니다. 저는 둔덕에 불 질러 마른 풀 태우면서 해충 알이 죽기를 바라고, 또 지난해 떨어져 있다가 더러 새들에게 쪼아 먹히고 남은 곡식 알갱이가 올해에는 돋아나 제게 걷히기를 바랍니다. 무릇 사람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 미물은 없지만 사람은 함부로 미물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 자신을 통해 깨칩니다. 새삼스럽게 깨칠 때, 재 덮인 둔덕에서 가느다란 연기 몇 줄기가 피어올랐다가 공중에서 흩어집니다. 아하, 불현듯 가리사니가 생깁니다. 님께서는 며칠씩 어딘가를 가시면 거기에서 저처럼 행하시고 돌아오시는군요. 그러니 님께서 아무 연락이 없으셔도 먼데서부터 봄빛이 어리다가 하늘까지 차올라 파랗지요. 님께서 아니 계실 때, 나무들은 움틔우고 등성으로 철새들은 날아옵니다. 이 무렵에 오는 비도 산에 들에부터 조심조심 잘게 옵니다. 이것도 그 사연 때문입니까? 이제 님께서는 제 곁에서 영영 떠나셔도 좋습니다.

『님 시편』 (민음사, 1994)

님은 단순한 접미사에서 명사, 대명사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광범위하게 쓰인다. 님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고대시가 ‘공무도하가’에서 고려가요 ‘가시리’, 조선조 왕방연의 시조 ‘고운님 여의옵고’,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님은 우리 민족의 문학사를 거의 관통하고 있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선 상대방이나 제삼자를 가리지 않는 범용 대명사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하종오 시인은 님을 모시고 시편까지 엮은 터라 ‘님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하다. 산문시 「가랑비」의 님은 종교적인 신이라기 보단 관념상의 절대자 내지 자연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봄빛이 온 누리에 가득차고, 가느다란 가랑비가 내린다. 개울 어귀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물뱀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겨울동안 얼어붙었던 물길이 풀리고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면 갓 눈 뜬 어린 물고기도 세상 구경을 나온다. 님은 볼 일 보러 갔나 보다. 님이 없어도 제각기 제 할 일을 알아서 잘 한다.

시인은 밭두렁에 불을 질러 마른 풀을 태운다. 풀 섶에 깐 해충 알을 소각한다. 해충은 태워 없애지만 참깨씨알이나 콩알 등 남은 곡식 알갱이는 살아남아 소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충은 곡식의 포식자인 관계로 식량을 축내는 인간의 경쟁자이다. 자신이 해충이라고 불리는 걸 안다면 벌레가 퍽 억울해 할 것 같다. 벌레도 아마 고통을 느낄 것이다. 알 상태로 죄 없이 미리 화장당하는 해충의 신세가 가엾다.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이 판단하여 어떤 생명체는 박멸하고 어떤 생명체는 보존한다.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생명은 모두 존귀하다는 진리를 깨친다. 둔덕 위로 피어오른 한줄기 연기가 하늘가에서 스러진다.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님은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

봄빛이 차올라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이 파랗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가지마다 처녀의 젖 망울 마냥 연초록 새순이 살포시 터진다. 소년은 연한 가지를 골라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며 봄날을 맞이한다. 산등성이를 넘어온 철새들이 피리소리에 맞춰 공중곡예를 한다. 가랑비가 산과 들을 살짝 적신다. 님은 안 계시지만 봄은 완연하다. 이젠 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다부진 홀로서기 선언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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