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전쟁의 비극은 이제 그만∼
… 6·25전쟁이 발발한 해 늦가을이다. 국군의 진격으로 수복된 3·8선 접경 북쪽 마을이 그 배경이다. 성삼은 전쟁 이태 전에 3·8선 접경 남쪽마을로 이사하였다. 전쟁 발발 후 남쪽으로 피난 갔다가 치안대원으로 고향마을에 돌아왔다. 고향마을에 들어서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지만 지금의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전쟁이 한차례 휩쓸고 간 마을은 삭막하다. 죽마고우 덕재가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맡은 죄로 잡혀왔다. 성삼은 덕재를 호송하는 일을 자청한다. 두 사람은 담 모퉁이에서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고 밤 서리를 같이 하던 단짝동무다. 그 동안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서로에게 물어본다. 상대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사람을 죽인 일이 없다는 반응에 성삼의 마음이 열린다. 빈농에 근농이라 농민동맹 부위원장직을 맡았다고 한다. 함께 놀려먹었던 꼬맹이와 결혼했단다. 피난을 안 간 이유가 농토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덕재의 말에 성삼은 같은 경험을 해본 농민의 자식으로서 공감한다. 덕재가 이념과 무관한 농민이라는 사실에 성삼은 단짝동무로서의 신뢰를 회복한다. 고개를 내려온 곳에서 성삼은 주춤 발걸음을 멈춘다. 전쟁 통에도 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는 학 떼를 본다. 열 두어 살 때 성삼은 덕재와 같이 학을 잡아 애완동물처럼 갖고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서 누가 학을 쏘러 왔다는 말을 듣고 학을 풀어 주었다. 그 옛날 일을 생각하던 성삼이 학 사냥을 하고 가지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어리둥절해 하던 덕재는 성삼의 의도를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어 도망한다. 높푸른 하늘엔 단정학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순박한 이웃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보통사람을 살인자로 만든다. 군복을 입거나 완장을 차고 죄의식 없이 저지른 살인이라고 괜찮은 건 아니다. 전쟁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파멸을 낳는 악마적 이벤트다. 신봉하는 이념을 실현시켜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야욕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을 없애야 무모한 집단 살인을 막는다.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은 작가의 영역이기도 하다. 「학」에서 추구하는 테마다. 한편의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총칼이나 사자후보다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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