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병

이하석

바람 불어 와 신문지와 비닐 조각 날리고/깊은 세계 속에 잠든 먼지 일으켜 놓고/사라진다, 도꼬마리 대궁이 밑 반짝이는/유리 조각에 긁히며. 풀들이 감춘 어둠 속/여름은 뜨거운 쇠 무더기에서 되살아난다./녹물 흘러, 붉고 푸른, 뜨겁고/고요한 죽음의 그늘 쌓은 채.//목마른 코카콜라 빈 병, 땅에 꽂힌 채/풀과 함께 기울어져 있다, 먼지와 쇠 조각들에 스치며/이지러진 알파벳 흙 속에 감추며./바람 빈 병을 스쳐갈 때/병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끊임없이/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휘파람처럼 풀들의 귀를 간질이며./풀들 흘리는 땀으로 후줄그레한 들판에/바람도 코카콜라 병 근처에서는 목이 마르고.//바람은 끊임없이 불어 와/콜라 병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쓰러진다. 풀들 그 위를 덮고/흙들 그 속을 채워, 병들은 침묵한다,/어느덧 묵묵한 흙무더기로 속을 감추면서.

『투명한 속』 (문학과지성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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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와 비닐 조각이 바람에 날린다. 중력에 취해 엎드려 자던 먼지를 들쑤셔놓곤 바람은 또 어디론가 가버린다. 상흔으로 얼룩진 창이자 대궁 밑엔 깨진 유리조각이 햇빛에 아가리를 벌리고, 풀 섶 아래 버려진 쇳조각 더미가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받아 달아오른다. 단 쇠 무더기에서 붉고 푸른 녹물이 눅진하고 침묵의 사신이 잔뜩 독을 품는다. 코카콜라 빈병이 풀 옆 땅바닥에 비스듬히 꽂혀 있다. 쇳조각에 긁히고 먼지로 덮여 알파벳마저 분명하지 않은 빈병이 흙 속에 묻혀 가시처럼 눈에 꽂힌다.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변명 같기도 하고, 구원을 청하는 말 같기도 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성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풀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휘파람을 분다. 들판은 풀들이 머금은 물방울로 습하지만 빈병 근처엔 바람마저 목이 마르다. 빈병은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에게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지만 바람은 못들은 척 차갑게 외면한다. 왕따 당한 빈병은 바람에 쓰러진다. 풀들이 그 위를 덮치고 빈병 속에 흙이 채워진다. 마침내 빈병은 말을 멈춘다. 또 세월이 흐르겠지만 빈병은 말없이 묵묵히 흙무더기 속에 모습만 감출 뿐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77억 명을 넘어섰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통에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스웨덴의 극단적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느닷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본능적 위기감에 기인한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역병도 지구가 몸살을 앓는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시인은 대표적인 환경파괴의 원흉으로 유리병과 비닐 그리고 폐철을 꼽는다. 유리병이나 비닐은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고 오랜 세월이 걸린다. 당장 서둘러도 늦다. 그런데도 남 탓만 하고 눈치만 본다. 환경문제에 대한 해답을 인류문명의 근본적 성찰에서 구하는 시인의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

이하석 시인을 ‘광물적 상상력’을 가진 ‘자연친화적’이고 ‘문명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시인으로 평가한다. ‘광물적 상상력’이 인간 중심적 사고를 거부하고 생명의 유무를 떠나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상상력을 의미한다면, ‘자연친화적’이란 말이 휴머니즘의 부인을 통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면, ‘문명 비판적’이라는 말이 인간이 추상과 관념으로 쌓아올린 모더니즘의 주관적 시각을 거두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면, 버려진 폐기물의 저주받은 일생을 노래한 「버려진 병」은 자연친화적 문명 비판적인 광물적 상상력이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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