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피다

두마리아

귤 한 상자 주문했는데 봄이 실려 왔다살짝 무임승차한 몽우리 진 동백/ 섬 시인 쪽빛 시심을/ 이 아침에 받아적네

-『좋은시조』(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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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아는 서울 출생으로 2017년 『좋은시조』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유심시조 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제주는 봄빛이 한창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제주라는 섬이 있어 나라를 나라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과 같이 외국으로 나가는 길이 끊긴 상황에서 제주는 우리가 기댈 휴양지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이 없어서 썰렁하기까지 했지만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여유가 생기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제주의 자연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평화의 섬 제주의 빼어난 절경은 그 어느 미술작품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제주의 미적 현현을 어찌 필설로 다 형용하랴.

‘시가 피다’는 소박한 노래다. 생활 속의 작은 이야기가 한 편의 단시조로 빚어진 것이다. 시는 이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귤 한 상자를 주문했는데 봄이 실려 왔다고 한다. 향기로운 귤만 온 것이 아니라 제주의 봄이 복닥거리는 서울로 배달되어 온 것이다. 이따금 제주 사람들은 지인에게 택배를 보낼 때 상자에 귤을 채운 다음 꽃 한 송이를 함께 실어 보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살짝 무임승차한 몽우리 진 동백이 등장한 것이다.

활짝 피지 않았으므로 꽃병에 꽂아두면 얼마 있지 않아 만개할 것이다. 시의 화자는 그것을 두고 섬 시인 쪽빛 시심, 이라고 말하면서 아침에 온전히 받아 적고 있노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참 정갈하다. 시가 어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 가까이에 있다. 무심코 지나쳐서 그렇지 삶의 현장 곳곳에 시가 도사리고 앉아 있어 우리가 찾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델’이라는 단시조에서 웃음이 귀한 시절에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파리 위로 배추밭에 꼬물 구멍 숭숭 배추 서너 단이 있는데 그것을 내다파는 아주머니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 눈길을 끈다. 입말을 생생하게 살려서 약 한나도 안 쳤슈, 봐 벌레도 있잖여, 라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갈 것을 권한다. 거기다가 무공해 전속 모델유, 야가!, 라고 하니 그 유머 감각이 재치만점이다. 좌판 아줌니 넉살은 백단이니 어찌 사가지 않을 텐가. 난전은 이렇듯 사람 사는 맛을 내는 곳이다. 어렵게 좌판을 펴놓고 있지만 궁색하지가 않다. 환한 햇빛과 바람 속에서 생기가 넘쳐나고 때로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시조에서 재치와 해학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군의 시인이 있다. 이제 그도 그 일군에 합류하여 웃음을 제공하는 시편들을 많이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재치와 해학은 아무나 해낼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딱 적격인 시인이 새로 등장한 것이다. 제주를 노래한 시인은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이생진 시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설교하는 바다’에서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라면서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라고 노래하기도 하고 ‘만년필’에서는 성산포에서는 관광으로 온 젊은 사원 하나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 라고 노래한다. 제주를 온몸으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생생한 이미지가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가 피다’의 시인도 앞으로 더 많이 제주를 노래하기를 기대한다. 문득 제주의 파도소리와 봄빛, 수선화가 보고 싶은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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