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김동리

∼어머니의 사랑은 적수가 없다∼

…술이네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술이 그렇게 세 식구다. 술이네 집에 불행이 찾아들었다. 어머니가 나병에 걸린다. 나병을 고치려고 전 재산을 탕진했지만 낫지 않았다. 결국 술이네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장가 밑천마저 날린 술이는 집을 나간다. 아버지는 비상이 든 찰떡을 어머니에게 준다. 그 사실을 알고도 눈물을 흘리며 떡을 먹지만 곧 토해낸다. 마침내 아버지도 집을 나간다. 그녀는 절망감에 휩싸여 아들을 찾아 헤맨다. 기차다리 근처까지 갔다. 그곳엔 병신, 거지, 문둥병자 등이 토막을 짓고 기거하고 있다. 그녀도 토막을 짓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갈 곳이 없는 데다 가까운 곳에 복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빌면서 복바위에 돌을 갈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녀는 매일 소원을 빌며 복바위에 돌을 갈았다.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복바위의 영험한 신통력 덕분인지 그녀는 장터에서 아들을 만난다. 허나 아들은 돈을 벌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다시 떠난다. 그녀는 아들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면서 돌을 갈았다. 그래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에만 갈아서 그런가 생각하고 낮에 가서 갈았다. 그러다가 마을사람들에게 들켜 죽도록 맞았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터에서 아들의 옥살이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졌다. 한편, 땅주인은 그녀를 쫓아내려고 토막에 불을 질렀다. 불타는 토막을 참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녀는 복바위를 껴안고 죽었다. 마을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더러운 게 하필 예서 죽었노.” “문둥이가 복바위를 안고 죽었네.” “아까운 바위를…….”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번질번질 말라 있었다.…

나병에 걸린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나병은 얼굴과 손발이 뭉개지는 증상으로 인해 그 비주얼이 끔찍하다. 그래서 나병은 모든 병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다. 어머니에게 천형을 씌운 것은 어쩌면 시험적 호기심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극단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다. 살이 썩어문드러지는데다 이웃사람들의 지독한 편견과 무자비한 학대로 삶이 온통 해체되는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는 오직 일편단심 자식뿐이다. 아들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처절하게 돌을 간다. 어머니의 소원은 나병을 치유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도 아니다. 아들을 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나병도 어머니를 막을 수 없다.

노거수나 바위를 신령시하는 토속신앙은 서민들 삶 속에 녹아있다. 오방색 띠를 두른 고목이 버티고 있고 그 주변에 돌무지와 서낭당이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거석신앙도 뿌리 깊은 토속신앙이다. 큰 바위 주변엔 흔히 돌무지가 흩어져 있다. 편평한 바위 턱마다 돌들이 얹혀 있기 일쑤다. 큰 바위 밑 틈새엔 촛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 ‘복바위 전설’은 도처에 퍼져 있다. 돌을 갈아 바위에 붙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새롭진 않다. 아무것도 없는 서민들의 의지 대상은 부담 없이 비빌 수 있는 바위나 노거수밖에 없다. 근거 없는 맹랑한 속설이지만 거기에라도 기대어서 버텨보자는 거다. 복바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다. 그렇지만 아들이 감옥에 있다는 말에 마지막 기대마저 스러진다. 설상가상 토막마저 불탄다.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 희망이 사라지면 삶도 없다. 어머니는 바위 위에 엎드려 죽는다. 어머니의 얼굴은 편안하다. 복바위가 아들을 돌봐줄 걸 믿는 까닭이다. 아들을 위해 소원을 빌면서 바위에 얼굴을 부비는 어머니의 모습이 처연하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