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나아가 특수고용근로자, 플랫폼 근로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가면서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고용보험 적용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 한다.

고용보험은 실직한 경우 구직활동 및 재교육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이다.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선 고용보험 가입과 보험료 납부가 선행조건이다. 고용주와 근로자는 과세표준의 0.8%씩 보험료를 매달 납부한다. 사업규모에 따라 고용안정과 직업능력 개발사업을 위해 추가로 보험료를 더 낸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분은 고용보험 전국민 확대가 마냥 꽃소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보험료 납부 부담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는 생색만 낼 뿐 예산을 보태주는 일은 없다. 말하자면 제 팔, 제 흔들기다. 게다가 발표문이 엉성하고 부실하다. 엄밀히 따지면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것과 전국민 고용보험은 서로 다르다. 이런 오류는 현 정권의 정책이 주먹구구 아마추어리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국정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어선 곤란하다. 분위기에 취해 기분 내키는 대로 지엽적인 부문을 콕 집어 발표하게 되면 다른 부문과의 정합성이 깨어지고 실무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정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란 선의만 보고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던 일. 영화 ‘판도라’를 보고 감격해서 원전폐기를 선언했던 일, 조국 자녀 입시비리가 부상하자 느닷없이 정시확대란 입시정책을 발표했던 일. 그때의 일시적인 분위기와 국민정서에 휩쓸려 정밀한 검토나 여론 수렴 절차도 없이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한 사례는 현 정권 들어 유독 많은 것 같다.

고용보험은 정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복지정책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신중히 수립되어져야 한다. 경제에 무리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에 맞게 설계되어야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시행 중인 4대 보험 간 균형 유지도 기본이다.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보험, 산업재해 예방과 그 부보, 노후생활 기금의 적립, 그리고 구직활동 지원 및 재교육 등은 어느 하나도 포기할 게 없다. 모두 함께 달성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지만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경제 부담을 그 전제로 한다.

복지정책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무조건 확충할 순 없다. 고용안정과 실업급여, 재취업 교육 등 고용보험의 기능과 역할만 보고 덜렁 확대하겠다는 것은 정말 무모하다. 동전의 한쪽면만 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전임자들이 복지가 싫어서 확충하지 않은 건 아니다. 관계당사자의 금전적 부담이 전제되기 때문에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을 저울질하면서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 과중한 짐을 지우면 경제가 주저앉는다. 고용주의 부담을 고려하고 근로자의 주머니사정을 감안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할 일이다.

정책의 보완과 확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경제가 좋을 때 타이밍을 잘 잡아야 저항이 적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이다. 실업자 급증이란 한 쪽면만 보고 고용보험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는 섣부른 결정은 정말 외눈박이 정책이다. 지금 상황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고용주와 근로자는 양쪽 모두 공히 보험료 부담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부담의 한계로 모든 복지를 한꺼번에 확충할 수 없다면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사정으로 봐선 고용보험 확대보다 오히려 국민연금 현실화가 더 급하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령층의 생활보장이 현안이다. 국가가 노후를 전적으로 보장하지 못할 양이면 소득이 있을 때 돈을 거둬서 은퇴 후 돌려주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고용보험은 실업위험이 낮은 사람에게 무용하고,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은 ‘역선택’이나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이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을 적립한 다음 퇴직 후에 돌려받는 구조이므로 설득력이 큰 콘텐츠다. 국민연금의 현실화 잠재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역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도와주지 못할망정 기업과 근로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줘선 안 된다. 경제회생과 경기진작에 집중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어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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