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61) 경산 아시아농장

발행일 2020-05-06 14: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농촌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어가는 다문화 청년강소농

결혼이주여성의 색다른 도전, 청년창업농을 꿈을 키운다

전통시장에서 베트남 채소를 팔고 아시아마트를 준비하는 다문화 청년강소농

도정애 대표가 수확한 베트남 고추를 보여주고 있다. 작지만 상당히 매운 고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몰려들었다.

미국으로만 가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이 보장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아메리칸 드림에는 미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나 민주주의, 평등, 경제적 여유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도 그 꿈의 행렬은 중남미로 이어져 있다.

도정애 대표가 수확한 베트남 고추를 보여주고 있다. 작지만 상당히 매운 고추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아시아권에서 코리안드림이 시작됐다. 아메리칸 드림과 마찬가지다. 2011년 베트남에서 들어온 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젊음을 불태운다. 그 코리안드림 행렬에 ‘도티토아’라는 여성도 있었다.

농업에 도전해 자신의 코리안드림을 완성해가는 결혼이주여성도 있다. 경산에서 아시아농장을 운영하는 도정애(38) 대표다. ‘도티토아’가 바로 도정애 대표다. 한국생활 9년차로 2018년 농업에 도전해 3천300㎡의 시설하우스에서 10여 종의 베트남 채소를 재배해 연간 1천700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도정애 대표가 밭에 파종한 베트남 채소의 발아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소량 다품종 형태로 재배한다.
아직 소득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영농경력 3년차의 결혼 이주 여성임을 감안하면 작은 성과라고는 하기 어렵다. 지난해에는 청년창업농에 선정되는 성과도 올렸다.

◆농사도 척척, 자녀 교육도 척척

도정애 대표의 시설하우스 속에는 사철 푸름이 가득하다. 농장에 들어서면 여기가 한국의 농장인지 의문이 생긴다. 하우스 한 편에서 ‘농(베트남 전통모자)’을 쓰고 일하는 도 대표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도정애 대표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는 베트남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배추나 시금치 같은 우리 채소는 없고 모두가 동남아지역 채소들이다. 도 대표는 베트남에서 온 한국생활 9년차의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으로 귀화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남편(허승욱 46)은 건축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농사일을 돕는다.

2019년 청년창업농에 선정된 억척 농부다. 지난해까지 전국에 3천200여 명의 청년창업농이 있지만 결혼이주여성이 선정된 사례는 도 대표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사일을 마치면 저녁 시간에 자녀들에게 베트남 어를 가르친다. 3개국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다.

집에서 아이들은 한국어와 베트남 어를 함께 사용한다. 베트남 어를 몸에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어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베트남 어가 익숙해지면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또순이 ‘베트남댁’의 한국 정착기

도 대표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인근에 있는 ‘하이퐁’에서 꽃과 식료품 가게에서 일했다. 음식을 만들고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형제자매가 12명인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도정애 대표가 농지에서 재배하는 베트남 토란을 살펴본다. 우리나라 토란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많이 크다.
한국으로 먼저 시집온 학교 선배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복숭아와 자두 등의 재배방법을 배웠다.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배우게 된 것이다.

농장 귀퉁이에 고향을 생각하며 베트남 채소를 심었다. 자가소비용으로 재배했지만 남는 물량이 생기자 동남아지역 근로자들에게 나눠줬다. 주변에서 판매하라는 말을 듣고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다.

현재 3천300㎡ 시설하우스에 베트남 고추와 가지, 배추 등 10여 가지의 작물을 재배한다. 주로 동남아 근로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똑똑하고 야무진 일 처리 덕분에 주변에서는 또순이로 불린다.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마을에서 인기가 높다. 하루 일과를 보면 쉴 틈이 없다. 억척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새벽 5시에 농장에 나와서 저녁 8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간다. 중간에 두 아들의 유치원과 학교 등하교와 식사, 간식까지 챙긴다. 주변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한다고 걱정을 하지만 일하는 것이 즐겁단다.

도정애 대표가 시장에서 판매할 베트남 채소들을 수확하고 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는 모습을 보면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행복도 느낀다. 특히 인근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친구들이 농장 구경을 오는 것이 반갑다. 휴일이 되면 농장은 고향 친구들의 만남의 광장이 된다. 아직 농기계 운전이 서툴러 밭갈이나 로터리 작업 등 힘든 일은 남편이 도맡아서 한다. 올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농기계 교육을 받아서 모든 작업을 직접 하겠다는 의욕을 보인다.

◆주말에는 장사꾼으로 변신

4일과 9일에는 경산 하양 전통시장에 나가서 노점상을 펼친다. 농사꾼이 아니라 장사꾼으로 변신한다. 노점도 경쟁이 치열해 자리를 잡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장사할 자리를 구했다. 한국에서 빨리 정착하고 싶다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주변 상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는 베트남 채소류.
농장에서 키운 베트남 채소를 판매한다. 최근에는 품목을 확대해 쌀국수와 간장 등 간단한 식료품도 추가했다.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는 근로자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다. 처음에는 동남아 근로자들이 고객이었으나 이제는 한국인 고객도 많이 늘었다.

장날이 되면 더 바빠진다. 농장 일은 새벽에 마무리하고, 저녁에 준비한 채소를 들고 장터로 나선다. 장사 노하우도 생겼다. 하루에 30만 원 정도를 판매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호객을 할 정도로 넉살도 생겼다.

‘덤’과 ‘에누리’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결혼 이주 여성이 노점상을 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덤으로 물건을 얹어 주고 흥정을 하는 모습을 신기해한다. 이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단골이 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는 물음에 도 대표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답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학교 온라인 개학과 어린이집 휴원으로 자녀를 돌보는 관계로 장날이 아닌 토, 일요일에 하양시장에서 판매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한 SNS 판매를 병행한다.

◆초창기 언어 소통에 어려움 겪어

모든 일을 열심히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한국에 온 지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외로움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결혼 초기에는 한국말을 익히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는 베트남 채소류.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사투리를 쓰는 관계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사투리는 또 다른 외국어처럼 들렸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언어의 장벽을 많이 넘어섰다.

경상도 사투리도 구사할 정도로 능숙하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남편이 많이 도왔다. 베트남에서 12남매가 함께 생활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조용한 상황이라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의 자리는 자상한 남편과 두 자녀가 메워주고 있다.

주말에 농장을 찾아오는 베트남 친구들과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1년에 한 번씩 부부가 친정 나들이를 했으나 농사일을 시작하면서는 혼자서 아이들만 데리고 간다. 그동안은 남편이 농장을 관리한다. 농장을 비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 마음 편하게 친정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하다.

◆아시아 마트를 열고 싶어

도 대표의 꿈은 동남아 채소를 판매하는 ‘아시아 마트’를 여는 것이다. 동남아지역의 채소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전문점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는 베트남 채소류.
경산이나 영천, 반야월지역의 시장 안에 좋은 장소가 있는지 물색 중이다. 낮에는 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과 주말에 가게를 열어 판매하는 것이다.

일종의 야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히 판매만을 하는 가게가 아니라 동남아지역 근로자들이 만나서 소통하는 만남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소식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해 먼저 온 선배들이 후배들의 한국생활 정착을 이끌어주는 사랑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다문화 청년창업농 ‘도티토아’의 코리안드림을 응원한다.

※본 기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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