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개방 등 농어업 관련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농어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국회로, 정부 청사로 몰려간다. 그러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이야기를 정부에 전달해줄 공식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어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어디일까. 농·수협인가, 각종 농어민단체인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농·수협은 농어민이 회원으로 가입한 협동조합일 뿐이다. 또 한농연, 전농, 농촌지도자회, 한우협회 등 여러 단체들은 설립목적에 맞게 가입한 농어민들의 분야별 대표단체다. 우리나라에는 전체 농어업인을 대표하는 기관이 없다.

이러한 가운데 농어민 대표단체로 ‘농어업회의소’가 잇따라 설립되거나 설립이 추진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민관협치의 농어정(農漁政) 거버넌스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20대 국회 법제화 사실상 무산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오는 29일 임기가 만료되는 20대 국회에는 ‘농어업회의소법’이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손금주, 무소속 정태옥 의원 등 10명의 여야 및 무소속 의원이 지난 2019년 1월 발의한 법안이다.

헌법 제123조 5항에는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 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는 농어업회의소법 통과가 사실상 물건너 갔다. 민생법안이긴 하지만 주목도가 떨어지는 농어업 문제여서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는 생소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상공회의소가 상공계를 대표하는 법적 단체로 기능하는 것과 같다. 자유무역의 확대로 수출입이 개방되면서 영세한 국내 농어업인들의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농어업회의소는 여러 농어업 단체를 묶어 지역, 단체, 품목 등 전체 목소리를 대변하는 법적 조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대표성,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농어업회의소는 현재 경북 봉화, 강원 평창, 전북 진안 등 전국 14개 시·군에서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최초는 2011년 창립한 진안이다. 광역 단위로는 충남도회의소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법률이 제정되면 특수법인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설립이 추진 중인 곳은 13개 시군이다. 경북에서는 경주, 의성, 영덕, 고령 등이 움직이고 있다.

봉화 농어업회의소는 2012년 출범했다. 현재 개인 회원은 1천100여 명이다. 전체 7천500여 농가의 15%가 가입했다. 28개 농어민 조직이 단체 회원으로, 농축수협 등은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설립 9년째를 맞은 봉화회의소는 농축산물 가격안정 기금(100억 원) 조례 제정을 이끌어냈다.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센터(2014년 7월~2019년 2월)를 운영하고, 백두대간 봉화사과데이 축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로컬푸드 매장(2016년 6월~현재)을 개설하는 등 로컬푸드 활성화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농어업회의소의 기본 목적은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농정을 현장과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가 방향성이다. 그러면 범농어업계의 대의기구로 정부 및 지자체와 파트너십이 구축된다. 농어업인의 참여를 통해 농어정의 효율성도 제고할 수 있다. 법률로 보장되는 자율기구이자 공적 대의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민관협치의 농어정 거버넌스 구축

농어업회의소는 농정 자문 및 건의, 지역 실정에 맞는 농어업제도 조사연구, 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한다. 또 귀농귀촌 지원, 농어촌 공동체 만들기, 로컬푸드 활성화 등 다양한 특화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지자체 농업조례 추진 등도 중요한 기능이다.

농어업회의소법(안)에 따르면 조직은 총회, 대의원 총회, 이사회를 둔다. 100명 이내로 구성되는 대의원회는 읍면지역 대표, 단체 회원, 특별 회원 대표를 선출해 운영된다. 분야별 6~8개의 분과위원회를 둘 수 있다.

농어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농어민의 뜻이 농어정에 반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어업회의소가 필수적이다. 21대 국회가 개원되면 우선적으로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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