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단상

발행일 2020-04-28 14:57: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지구촌은 코로나로 난리지만 우리나라는 한숨 돌린 상황이다. 뒤늦게 서구와 미국에서 워낙 드세게 퍼지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실책과 혼란상은 상대적으로 사소해졌고 나아가 그 난맥상마저 일정부분 덮혔다. 대국의 막강한 기세를 지켜보노라면 뜬금없이 기가 죽는다. 잠시 스쳐가는 걸 두고 유난스럽게 엄살을 떨었다는 황당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헤드라인에서 밀려난 것 같아 왠지 허전하기까지 하다. 세게 몰아붙여 세상의 이목을 끌고 싶고, 미친 경쟁심마저 살짝 인다면, 철없는 애정결핍이거나 대책 없는 경쟁신드롬이다.

매를 일찍 맞은 덕분인지, 방역과 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한 때문인지 아니면 심한 건망증 탓인지, 그 정확한 진단이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 정도로 선방한 건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다. 전염병 선배로 초장에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그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나라가 생기고 보니 괜스레 우쭐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뎌져서 바깥나들이가 눈에 띄게 늘고, 거리엔 제법 활기가 넘친다. 그렇지만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은 벌써 졌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할밖에.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에 경제가 드러누워 있다. 경제를 일으키는 일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때다. 코로나 사태로 치명적 피해를 입은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구호가 화급하다. 기업은 일단 논외로 하면 우선 긴급재난지원금이 거론된다. 국민 모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견해와 피해가 심한 대상자를 선별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다.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두 피해를 봤기 때문에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소상공인이나 서민은 절대적 피해액은 비록 적을 수 있지만 생계를 위협당할 소지가 크다. 피해액으로 판단하면 기업이나 부자가 더 큰 손해를 입었을 수 있다.피해의 심각성을 일률적으로 재단하기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 주자는 것이다. 피해 기준을 확정하기 어려운데다 피해 본 사람을 가려내는 일도 쉽지 않고 그 비용도 만만찮은 점을 전 국민 지급의 당위성 근거로 주장한다. 그러나 선별 지급의 절차적 실익을 따지는 것은 그 본질이 아니다.

이에 대해 코로나 재난 피해자에 한정해서 구호하는 것이 맞는다는 주장이 맞선다. 국가는 최후의 안전망일 뿐 모든 걸 해결해주는 절대자는 아니다. 국가의 재원은 어차피 국민이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시혜는 도로 세금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자생력을 잃었거나 복원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국가가 예외적으로 나서서 돕는 것이 긴급재난지원이다. 일률적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두루뭉술한 면피성 처방일 뿐 최선의 방책은 아니다.

전 국민 대상 지원의 최대 걸림돌은 포퓰리즘이다. 최근 과잉복지와 선심행정이 급증한 데다 총선을 거치면서 각 지자체마저 앞 다투어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 일단 포퓰리즘에 맛 들면 하고자 하는 의욕이 꺾여 놀고먹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고, 종국에는 나라가 거덜 나고 만다. 포퓰리즘은 끊기 힘든 마약이며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땐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 방법이다. 기본개념은 대개 꼬리표에 나타난다. 긴급재난지원금이란 꼬리표에 해답이 숨어있다. 우선 긴급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다음은 재난이다. 재난상황에 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지원금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호해 주고 도와주는 돈이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애써 도와줄 필요는 없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뜻하지 않은 재난에 처하여 위기에 빠진 사람을 긴급히 구조하기 위해 국가가 마중물로 주는 돈이다. 따라서 전 국민에게 주는 돈은 긴급재난지원금이 아니다. 100%냐, 70%냐, 그게 초점은 아니다.

정신적 피해는 논외로 친다면 안정된 직장의 봉급생활자나 선출직을 포함한 공무원 등은 역병 피해가 거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히려 생활비를 아꼈다. 마스크 값 정도라면 피해랄 것도 없다. 피해가 없거나 스스로 극복 가능한 경우라면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그들은 어쩌면 축복받은 계층이다. 표를 의식해서 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축복받은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더라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언론만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아무나 줄서면 주는 공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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