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 재고되어야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전공대는 호남 표를 겨냥한 대선 공약 사업으로 출발했다. 전남지역에 포스텍 같은 세계적인 공과대학을 설립하여 에너지특화대학으로 키워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학부 4백 명에 대학원 6백 명, 교수 백 명에 직원 백 명의 규모로 전남 나주에 개교할 예정이다. 창업형 연구인재를 키워서 에너지 분야의 세계 석학과 스타기업을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한전공대 설립에는 가속기 건설비용 약 6천 억 원을 포함하여 약 1조 6천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신흥명문 올린공대를 벤치마킹한다는 구상이다. 올린공대는 강의가 아닌 철저한 프로젝트 중심 수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벤치마킹 성공은 희망사항이다.

만사에 의욕이 지나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석학의 교수채용. 돈도 천문적으로 들겠지만 나주 같은 작은 도시에 세계 석학을 모셔오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 가족까지 생각한다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서울서 지방으로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에 뺏기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고의 창조적 학생 모집. 지독한 학벌사회에서 서울 명문대학에 갈 학생을 지방 신흥대학으로 유치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가난했던 시절, 장학금과 부가적 유인책으로 지방대학에서 우수학생모집에 성공한 경우가 있었지만, 소득이 높아진 작금엔 그런 미끼를 무는 학생은 드물다. 안 그래도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마당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중소도시의 신흥대학에서, 그것도 영재학생을 매년 모집한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교수와 학생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갈 길은 산 넘어 산이다. 올린공대 스타일의 커리큘럼 적용은 파격적인 실험이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용기만은 가상하다. 그 꿈은 야무진 것 같지만 곳곳에 난제가 숨어있다.

한전공대가 개교한다고 하더라도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천문학적인 돈이 계속 들어간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매년 500억 정도가 계속 투입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올 것인지 의문이다. 한전을 믿고 있겠지만 한전은 기업일 뿐이고 지금 조 단위 적자에 허덕이는 판이다. 부실화된 한전 홀로 감당하기엔 무리다. 게다가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된 일이고 보면 향후 정치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람을 탈 지 예측불허다. 급격한 인구감소로 공급과잉상태인 국내 대학상황과 맞물려 매년 그 커리큘럼을 소화해낼 우수한 학생모집이 지속가능할 지도 큰 과제다. 우리 교육시장 규모에서 소수정예를 꼭 국내에서 직접 투자를 통해 독력으로 키워야 하는지도 회의적이다. 소수의 영재를 뽑아 올린공대에 유학 보내는 방식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 경제적 분석과 가치분석을 통해 원점에서 재검토해 봐야 한다. 한전이 60년대에 설립했다가 재정난으로 사라진 수도공대의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한다.

한전공대 설립은 지역균형발전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대선과정에서 채택되었다. 한전공대는 그 지역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그 지역주민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는 걸로 인식되어있다. 일반 종합대학교라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상가와 유흥시설이 대학 인근에 모이면 지역경제가 크게 활성화된다. 땅값이 오르는 건 덤이다. 다만, 학생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고교생들에게 인기가 높아 매년 학생모집에 성공한다는 전제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한전공대는 학생 수가 대학원생을 포함해서 고작 천여 명인데다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게다가 학생들이 전부 공부벌레들이라 그들에게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기대하긴 무리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한전공대 설립을 백지화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한전공대 설립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예상되는 주민의 극렬한 반대로 선뜻 파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전공대 공약을 포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필요하다. 전남대나 GIST에 약 500명 정원의 ‘특성화전기공학부’를 설치하여 적극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 계획으로 판단한다면 지역의 학생들이 한전공대에 입학하여 혜택을 보기란 매우 어렵다. 반면 기존대학을 활용하면 학생의 자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성공 착근 확률이 높고, 지역 주민들의 자제가 입학하기 수월하며 기존대학도 업그레이드되는 등 일거삼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청년을 지역에 잡아두는 데 효과적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포스텍은 포항사람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포항사람들의 불만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전남도민과 나주시민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한전공대, 혹시 성공한다 하더라도 지역의 자부심 정도는 되겠지만 빚 좋은 개살구이기 십상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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