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적막강산』(모음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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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죽음과 이별을 낙화나 낙엽에 비유한다. 삶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죽음은 두렵다. 만남과 사랑에 대한 집착이 뜨거운 만큼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은 아프다. 꽃이 지는 줄은 판연히 알건만 미련과 집착은 악마의 유혹이다. 꽃이 져야 할 때를 알고 지는 것인지, 마지못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인지,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가야 할 때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지만 가야 할 때를 스스로 알고 순순히 떠나는 경우는 드물다. 가는 사람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얼굴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가슴은 찢어진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찬사는 희망사항이고 아름다운 위로다. 가는 사람에 대한 남은 자의 예의이기도 하다. 청춘의 열정과 사랑은 세월과 함께 스러진다. 기름 빠진 몸이 장작처럼 마르고, 비틀어진 다리가 후들거리면, 떠나야 할 때인 건 알지만, 차마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아직 할 일이 남은 듯하다. 누군가 잡아주길 기다린다. 그렇게 아등바등 버티다가 결국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서서히 정신을 빼놓으며 준비할 시간을 주지만, 알고도 모른 척 허세를 부린다. 걷고 달리며 뛰고 오른다. 세월을 거부하고 막아보려 하지만 결국 받아드리고 만다. 그래서 가야 할 때 흔쾌히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가는 사람은 비록 가지만, 남기고 간 열매가 생명을 잇고 또 만남과 사랑으로 이어질 터인데, 가는 것이 영 가는 게 아니다. 미련과 집착은 과욕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의자를 비워줘야 한다. 올 때 그렇게 물려받았듯이 갈 때도 그렇게 물려주는 법이다. 회자정리다.

시인은 소멸 및 자기희생을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필연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생명이 순환하듯이 인간의 운명도 윤회한다고 믿는지 모른다. 삼라만상과 시간의 흐름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윤회의 고리 속에서 순환할 따름이라면 만남과 별리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거장이다. 꽃이 핀다고 흥분할 일도 아니고 꽃이 진다고 눈물을 흘릴 일도 아니다. 꽃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듯이 인간 또한 순리대로 순순히 따를 일이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슬픈 눈물 또한 외면하기 힘들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줄 번연히 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집착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기에 죽음과 별리에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값싼 감상에 공감하고 서로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지 모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은 이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흔히 인용하는 명구다. 원래 관념과 조금 벗어난 의미로 굳어진 관용어구다. 권세가나 유명인사가 한창 전성기 때 은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쓰인다. 추해지기 전에 자리를 떠나라고 압박하는 경우에 잘 끌어다 쓴다. 괜스레 가슴 뜨끔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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