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뿔, 뿔

이현정

고요했던 순물질/ 비등점에/ 닿는 순간/ 최선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으로/ 뿔, 뿔, 뿔

들끓어 오르지/ 맹렬해진/ 심장의 서슬/ 차오르던 역한 기운/ 포화점을/ 넘는 찰나

한 모금 혼돈주로도/ 솟구치는 혀의 돌기/ 이맛전/ 짓이겨져도/ 치받아버리지

뿔/ 뿔/ 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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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2018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조 창작과 더불어 동시조에도 매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등단 제 일성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새롭게 바라보며 깊이 천착하여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만천하에 선언했다. 신인다운 패기가 넘치는 발언이다.

‘뿔, 뿔, 뿔’은 격한 시편이다. 우리는 흔히 굉장히 화가 치밀어오를 때 다소 속된 말로 머리에 뚜껑 열릴 지경이라고 말한다. 심하게 뿔났을 때의 정황이다. 바로 ‘뿔, 뿔, 뿔’은 그러한 의도가 표상된 제목이다. 뿔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쓴 것으로 보아 화자가 몹시도 심하게 일방적으로 당한 경험을 삭이고 삭이다가 시로 쓴 듯하다.

시조로서 연행갈이가 복잡한 것도 내면의 상황을 적시하기 위한 하나의 시적 장치로 보인다. 복잡한 감정의 기복 상태를 형태적으로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요했던 순물질이 비등점에 닿는 순간 최선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으로 뿔, 뿔, 뿔 하고 들끓어 오른다고 진술한다. 그때 맹렬해진 심장의 서슬을 감전된 듯 느낀다. 차오르던 역한 기운이 포화점을 넘는 찰나에 한 모금 혼돈주로도 솟구치는 혀의 돌기로 말미암아 이맛전 짓이겨져도 치받아버리겠노라는 결연한 항거, 저항 의지를 보인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끝마디에서 뿔 뿔 뿔, 을 제목처럼 세 번 쓰면서 행갈이를 하고 있다. ‘뿔, 뿔, 뿔’은 참신하다. 패기와 진정성이 있고, 가능성을 보인다. 한 시대의 배리를 거침없이 난타하며 밝은 길을 열어나가고자 하는 굳센 의지의 강력한 발현이다.

복잡다단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문학을 하는 일, 그것도 시조를 쓰는 일은 숙명이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영광보다는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쓰는 시조가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아 얼마간의 향기로 남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 때문에 오늘도 쓴다. 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이다. 쓰는 일이 삶 전체라는 생각으로.

교육 핵심은 은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은유를 습득하는 일에 시보다 좋은 길은 없다. 전문가만 있고 문학작품을 읽는 시민이 없을 때 사회는 사익 추구의 현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즉 문학은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바꿀 수 있기에 문학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실패한다. 진실로 문학의 쓸모없음에 경악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삶에 쫓길수록 시를 읽어야 하고, 시를 통해 마음의 때를 씻어내어야 한다. 시는 막힌 길을 열어줄 수 있고 막힌 숨을 시원히 뚫어줄 수 있다.

특히 시조는 우리 겨레의 호흡과 정서, 사상과 감정을 담기에 가장 알맞은 형식이다. 누구나 이 길에 들어서보기만 하면 정말 잘 선택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목소리의 시조, 이현정의 ‘뿔, 뿔, 뿔’을 나직이 음미하면서 그런 자각이 샘솟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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