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김인숙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는 아이를 뒷바라지하러 중국에 왔다. 아이를 세계인으로 키우겠다는 말은 핑계일 뿐, 속내는 남편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남편은 술에 절어 밖으로만 나돌았다. 소통은 단절되고 신뢰는 깨졌다. 생각 끝에 자녀교육을 명분 삼아 중국으로 도피한다. 조선족 여인의 부탁으로 돈을 전해주러 그녀의 딸 채금을 만난다. 스물다섯 살인 채금은 마흔이 넘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러 한국으로 떠나려고 한다. 채금의 부친은 어릴 때 총살당하는 사람을 본 후, 그 트라우마로 삶을 비관하는 루저다. 처형장면을 본 까닭에 그 한쪽 눈이 멀었다고 믿는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마저 잃었다. 채금의 모친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도 가지 않을 정도로 독하고 억척스럽다. 딸 채금의 결혼을 주선했다. 한국으로 떠난다는 채금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간다. 채금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삶을 반추한다. 문득 삶의 진정성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신 가게에 들어간다. 나비 문신 표본을 보면서 환청을 듣는다. 나비 문신을 하면, 바다를 건너다 날개는 떨어지고 몸통은 바닷물에 떠다닌다고. 팔다리가 잘린 채 바다에 떠다니는 남편을 떠올린다. 소금물에 절여있는 몸통뿐인 남편을 안아주고 싶다.…

중국에 온 본질적인 이유는 더 이상 소통되지 않는 남편을 떠나기 위해서다. 채금은 돈을 벌기 위해 노총각에게 몸을 팔다시피 한국으로 들어가려 한다. 나와 채금은 비슷한 목적을 가지지만 처방은 서로 반대다. 채금이 떠나갈 나라로 내가 찾아왔다. 내가 떠나온 나라로 채금은 꿈을 찾아간다. 채금도 한국이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돈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별수 없이 간다. 채금의 꿈은 내가 그 나이 때 가졌던 꿈과 다를 게 없다. 채금의 꿈이 허망한 게 눈에 훤하지만 그녀의 가정사정을 헤아려보면 말릴 명분이 없다. 각박한 현실은 꿈꾸는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꿈과 이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삶의 가치는 방기된다. 몸을 던져 세파에 맞서는 채금 모녀가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있는 남편과 오버랩 된다.

나비가 바다를 횡단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나비가 대양을 횡단하겠다는 것은 한낱 꿈이고 이상이다. 스물다섯 살 처녀가 간직한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듯이 나비의 꿈은 헛된 욕망이다. 사랑과 이념은 세파에 휩쓸려 가버리고, 꿈과 이상은 천박한 일상 속에서 사라져간다. 현실이 남긴 상흔은 깊고 쓰라리다. 자신에 대한 모멸과 남을 향한 책망이 삶에 대한 환멸로 이어진다. 꿈과 이상이 큰 만큼 염세적 증후도 깊은 법이다. 험난한 삶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더욱 자신감을 잃고 부정적으로 변한다. 한편으론 스스로 내면의 성을 쌓고 다른 한편으론 소통을 갈망한다. 건성으로 소통을 시도하나 늘 실망스럽다. 관심의 기미라도 보이면 덥석 물고 싶지만 그마저도 기대난망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기대감마저 스러진다. 불신과 증오만 깊어갈 뿐이다. 모멸이나 환멸 같은 자기부정은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한 구원의 몸부림이다. 불통이 낳은 빈정거림과 미움도 애정을 놓지 못하고 복원을 간절히 희구하는 반전의 단서다. 결혼생활의 파탄을 피해 중국에 건너온 ‘나’와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떠나는 ‘채금’을 대비시켜 봄으로써 진정한 삶의 본질을 깨친다. 바다를 건너지 못하면 어떤가. 건너가려는 꿈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 이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일만 남았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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