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마라도

발행일 2020-03-31 14:40: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마라도

강문신

차오른 생각에는 내 누이가 있습니다/ 산기슭 갯마을이거나 수평선 끝닿은 데거나/ 누이는 빛바랜 바다로 그 어디나 있습니다

우리 한 식구가 불빛으로 모여 살 땐/ 빈 소라껍질에도 만선 꿈은 실렸습니다

수평선 그 한 굽이에 마음뿐인 산과 바다/ 마라도 선착장은 받아든 저녁상입니다

허술한 초가지붕 덧니물린 호박꽃도/ 그 여름 놓친 반딧불 별빛 따라 내립니다

남녘 섬 하늘의 인연도 끝 간 자리/ 바다는 어디에도 가는 길만 열려 있고/ 서낭당 소망은 하나 둥근 사발 달 뜹니다

물마루만 바라봐도 청보리밭 키 큰 누이/ 한 점 바닷새가 저녁놀을 물고 와서/ 윤회의 섬 바위 끝에 하얀 집을 짓습니다

-시조집 『당신은 “서귀포…”라고 부르십시오』( 고요아침, 2007)

강문신은 제주 서귀포 출생으로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와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당신은 “서귀포…”라고 부르십시오』『어떤 사랑』과 현대시조 100인선『나무를 키워본 사람은』등을 펴냈다. 제주 특유의 정서를 밀도 높게 육화하는 시인이다. 제주도는 축복의 섬이다. 천혜의 자연 풍광은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안겨주고 있다. 큰 아픔도 안고 있는 섬이지만, 시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마라도는 최남단의 섬이다. 자그맣고 아름다운 섬에 발을 딛게 되면 누구나 감탄하기 마련이다. 국토의 끝을 밟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들레기 때문이다. ‘마라도’는 차오른 생각에는 내 누이가 있고, 산기슭 갯마을이거나 수평선 끝닿은 데거나 누이는 빛바랜 바다로 그 어디나 있다는 명확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향수를 일순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우리 한 식구가 불빛으로 모여 살 무렵 빈 소라껍질에도 만선의 꿈이 실렸던 것을 환기한다.

한 식솔이 불빛으로 모여 산다는 것은 웅숭깊은 의미를 가진다. 얼마나 소박하고 살가운 가솔인가. 또한 수평선 그 한 굽이에 산과 바다가 둘러앉아 있어 정겨움을 더해주고 있다. 마라도 선착장을 두고 받아든 저녁상이라고 읊조리는 것 역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때 허술한 초가지붕 덧니물린 호박꽃도 그렇고 그 여름 놓친 반딧불도 별빛 따라 내린다.

남녘 섬 하늘의 인연도 끝 간 자리마다 바다는 어디에도 가는 길만 열려 있고, 서낭당 소망은 둥근 사발과 같은 달로 떠오른다. 또한 물마루만 바라봐도 청보리 밭 키 큰 누이가 등장하고, 저녁놀을 물고 오는 새는 바위 끝에 하얀 집을 짓는다. 마라도는 이렇듯 평화로운 섬이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관광객들이 한 바퀴 휘돌면서 마음껏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들이킬 수 있는 복된 섬이다. 더구나 키 큰 내 누이가 있어서 더욱 친숙한 곳이다.

일생을 두고 한번쯤 꼭 가보아야 하는 이상향과 같은 섬인 마라도는 꿈을 잃고 살던 이가 찾아오면 다정히 손잡아줄 섬이다. 그렇기에 마라도에 와서 마음을 다잡으며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본도를 향해 늘 그리움을 안고 떠 있는 마라도는 언제 불러도 정겹게 다가와서 마음을 고요히 두드리는 섬이다.

강문신의‘마라도’를 나직이 한번 읊조려보라. 새로운 꿈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들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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