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코로나19가 남기고 가고 싶은 것

발행일 2020-03-29 16:45: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코로나19가 남기고 가고 싶은 것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벚꽃 송이가 미풍에 살랑댄다. 싸락눈처럼 내려앉아 바람에 흩날리는 분홍꽃잎들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 차창을 내린다. 고개를 내밀어 봄볕으로 충전이라도 하고 싶다. 바람을 코로 한껏 들이켜 텅빈 머리를 채운다. 푸르름이 더한 나무를 올려다보니 변함없이 찾아오는 자연의 변화가 참으로 고맙다. 소리 없이 내리는 봄의 향기가 더없이 소중하다.

눈만 뜨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코로나19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코로나19,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빌 게이츠의 아름다운 명상처럼 가르침이 분명 있으리라.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바이러스는 남녀노소 심지어 갓난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침범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이 코로나19는 모든 이들이 바이러스라는 미생물 앞에 기회는 균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던 동료의사도, 늘 운동하면서 건강을 챙겨 정정하던 선배도 감기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하더니 입원했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심한 상태로 종교, 나이, 직업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가 얼마나 호인인지, 얼마나 유능한지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찾아와 쓰러뜨린다. 영국 총리도 코로나19 확진이라니, 정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오는 불청객이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우리는 서로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확진자의 동선을 체크해보면 정말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양성 판정을 받은 이가 지나간 곳의 상점은 줄줄이 문을 닫고 심지어 병원 응급실도 폐쇄하여야 한다. 그러기에 정말이지 요즈음엔 몸이 아프고 열이 나면 먼저 내가 병원을 가도 되는지 안가고 약 먹고 집에서 쉬어보다가 연락해봐야 하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나의 행동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서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이 지나간다. 그사이에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해 보고 집에만 머무르고 있어 우울한 생각이 든다는 이가 많다. 모두가 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남에게 해가 될까봐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들 아름다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들로 산으로 나가서 바람 쐬고 싶지 않으랴. 해마다 찾아가던 의상 산수유 마을에는 산수유 꽃이 노란 구름처럼 피어나 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 딛을 틈 없이 즐거운 축제를 하고 있을 것인데. 올 봄에는 코로나19의 위험으로 그 축제를 취소하였다. 그곳에 사는 이는 단골들에게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잠잠하면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하면서. 아무리 그리운 풍경이더라도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을 찾아가는 그날까지 확진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고 병원에 입원한 이들이 무사히 퇴원하여 걸어서 집으로 가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의 건강이 바로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소중한 가치를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숱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중국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정말 국경도 여권도 비자도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5대양 6대주를 아무런 제약 없이 넘나들어 저 먼 대륙까지 날아가 단기간에 인류를 제압하다니 말이다.

코로나19는 또한 평소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걸려도 무증상자에서부터 심한 폐렴에 의식저하까지 동반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위중 환자까지 정말 다양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찾아오는 환자들을 맞이하던 원로 선생님이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를 전해 받았는지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입원해 계시다가 자꾸 상태가 나빠져서 그만 며칠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모두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지 않았겠는가. 정말 강건하던 어른이 황망히, 그것도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시다니. 임종도 못하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였으니. 그렇게 이 세상을 하직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 그 속에 든 면역이다. 늘 건강하게 단순하게 살아야 하리라. 건강한 먹거리와 부지런한 운동으로 몸을 튼튼하게 해야 병과 싸울 힘이라도 생기지 않겠는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기고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진정 잊고 살아온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서 코로나19가 이렇게 기습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닐까. 그가 남긴 교훈을 배울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을 터이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코로나19는 의료적 재앙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인간의 중요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위대한 교정자는 아닐까.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