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몸 파는 것이 가난 탓?~

김동인

…복녀는 가난한 농군의 딸이다. 선비 집안의 가율로 인해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소녀다. 열다섯 살 때, 가난 때문에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린다.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하다.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소작마저 모두 끊긴다. 평양으로 가서 막벌이를 하고 행랑살이도 해본다. 게으른 천성 탓에 그마저도 못 견딘다. 칠성문 밖 빈민굴로 흘러든다. 빈민굴에서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 복녀가 돈벌이에 나선다. 빈민구제사업으로 하는 송충이 잡이를 나간다. 거기서 감독의 유혹을 받는다. 일 안 하고 품삯을 더 많이 받는 법에 눈뜬다. 사람으로서 못 할 일도 아니다. 일 안하고 돈 더 받고, 긴장된 쾌감도 즐기며,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다. 그때부터 복녀는 남편의 묵인 하에 몸을 팔아 생활한다. 빈민들은 인근 채마밭에서 감자나 배추를 도둑질하기 일쑤다. 복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밤, 고구마를 도둑질하다가 주인인 왕서방에게 들켜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몸으로 때우고 돈까지 받는다. 그 이후, 왕서방은 수시로 복녀를 찾는다. 그러던 중, 왕서방이 처녀를 사서 장가를 들게 된다. 복녀는 낫을 품고 신혼 방에 뛰어든다. 왕서방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복녀는 낫에 찔려 사망한다. 왕서방과 남편 그리고 한의사가 머리를 맞댄다. 뇌일혈로 죽은 걸로 합의한다. 남편은 삼십 원, 한의사는 이십 원을 손에 쥔다.…

열악한 환경이 멀쩡한 소녀를 파멸로 몰아간다. 환경결정론적 시각이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묘사하는 자연주의 작품계열이다. 땡볕에서 염전을 일구던 차마고도의 처녀가 떠오른다. 지하염전수를 길어 계단식 밭에 붓는 고된 일을 하지만 먹고사는 일마저 녹록하지 않다. 반듯한 용모를 가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곳에서 벗어날 방도가 보이질 않는다. 소금 외에 다른 생존방법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주어진 환경을 거부하기 힘들다. 용빼는 재주를 가진들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환경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할 만하다. 복녀도 비슷하다. 몰락한 선비의 후손이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헐값에 팔려간다. 자기 의지대로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꿈이다. 가난과 불행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환경결정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환경이 운명을 결정한다면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을 법하다.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미담이나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는 없다. 아무도 애써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아야 할 이유도 별반 없다. 세월만 보내면 예정대로 되니까. 문명의 발전과 역사의 진전은 기대난망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성장과 진보가 눈부시다. 환경결정론이 맞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명제가 참이 아니라는 의미다. 소설 「감자」로 돌아가자. 복녀는 남편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정상의 범주에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꼭 몸을 팔이야 할 필연은 없다. 가난한 사람은 모두 몸을 파는가. 가난 때문에 몸을 판다는 말은 핑계다. 노력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보상에 눈먼 탓이다. 정직하지 못한 재물은 화를 부른다. 돈을 턱없이 쉽게 벌려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돈은 삶에 종속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진리를 웅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황금만능주의에 황금은 없다. 작가는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해본 사람이다. 황금은 피와 땀의 결과물일 때 빛난다. 복녀의 파국은 결코 가난 탓이 아니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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