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는 이들을 축하하며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완연한 봄날이다. 휴일이지만 기다릴 환자의 얼굴을 보러 병원으로 향한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바로 하는 일은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일이다. 산수유가 만발하고 초록빛 마늘밭이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봄이 왔다고 소식 전하는 지인의 사진을 바로 보며 입원실에 있는 그 환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결과를 클릭한다. ‘음성’이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른다. 환아의 엄마는 두 손을 모으며 ‘제발, 제발’을 연발한다. 입원 후 하루 지나 검사한 결과에서는 ‘미결정’이다. 얼굴에 구름이 드리운다. 어쩌랴, 조금 지나면 더 좋아질 것이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등 두드려주는 수밖에. 간절한 기원을 담아 그 다음에 한 검사에서도 미결정, 어쩌란 말이냐,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 실려 있다. 그 모습에 의료진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안절부절못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회진도 더 자주 돌아보면서 환자의 심경을 살핀다. 입맛도 없다고 하면서 그냥 내 놓는 일회용 도시락을 보면서 어찌하든 많이 먹고 힘을 길러야 바이러스도 빨리 배출된다고 위로도 되지 않을 위로를 건넨다. 미결정이라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다시 두 번의 음성이 나와야 퇴원할 수 있다. 아니면 다시 생활치료센터로 입소하여 지내야 하는데 지칠대로 지친 환자들은 여기서 꼭 나아서 나가고 싶다고 소원한다. 어쩔 수 없다. 하얀 거짓말을 하더라도 환자를 달래야 하지 않겠는가. 약 처방을 다시 해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가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르니 꼭 시간 맞추어 드시고 삼시세끼 밥도 남김없이 드셔야 해요”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속는 셈 치고 잘 먹고 빨리 나아 볼 게요”라고 답하며 희미한 미소를 띄운다.

다시 검사를 했다. 조심스레 열어본 결과 또 미결정이다. 어쩌면 좋으랴. 의료진은 그 환자 앞에서 결과를 어찌 발표할까 의논한다. 할 수 없다. 씩씩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겨내 보자고 발표한다. 환자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지켜보던 간호사가 먼저 고개를 돌린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 온다. 마주 앉아 방호복 입고 장갑 낀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떨림이 전해온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약없는 다짐을 하며 나와서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이런 민초들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랗게 눈이 부신다. 다시 처방을 내고 검사를 넣는다. 이제 다시 검체를 채취하여 기도하는 심정으로 검사실로 내린다. 드디어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고서는 대학 합격 발표를 본 듯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24시간 잘 지내고 나서 다시 검사를 했다. 이번이 제발 마지막이기를 소원하며. 드디어 진짜 두 번째 음성이다. 바로 병동으로 전화했다. 환자가 받는다. 두 번째 결과도 음성입니다. 퇴원 준비하십시오. 보건소로 격리해제 요청서를 보내었다. “격리해제 요청서가 승인나면 바로 집으로 가도록 해 드릴 터이니 짐을 최소한으로 챙기십시오. 될 수 있는 그대로 두고 버리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반드시 철저히 소독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이것저것 앞서서 챙겨야 할 일들까지 이야기했다. 발은 허공에 뜬 듯 허둥댄다.

음성 결과를 받고 이렇게 좋아해 보기는 아마 그들에게는 처음이지 싶다. “약도 없다는 코로나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 음성이 빨리 나올까요?”라고 묻던 그에게 음성입니다, 두 번 연속 음성입니다. “퇴원 하세요”라고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날이 정말이지 아름다운 봄날이다.

수양버들이 어느새 녹색 가지를 일렁이며 강둑을 장식한다. 따스한 봄볕을 받은 개나리는 천지사방에 노랑으로 물들이고 있다. 삼월 하순, 이맘때면 의성 사곡 산수유마을에는 축제 준비로 한창일 것이다. 기찻길을 넘어 산수유마을로 달려가 파랗게 돋아나는 마늘 싹을 넋놓고 바라 보던 때가 벌써 옛날 일처럼 아득하다. “기침하십니까? 목이 아프세요? 숨이 답답하지는 않은가요?” 선별 진료소 당직 설 때면 날마다 하는 질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고 나서 제일 먼저 하고픈 일이 무엇일까? 마스크 벗어던지고 숨 크게 들이쉬며 푸른 하늘아래 사랑하는 이들과 맛난 것 먹으며 마음껏 이야기하고 떠들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지 않을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원을 하는 그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퇴원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게 지내다 우리 다시 만나요.“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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