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수난 이대

발행일 2020-03-18 15:31:1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수난 이대

“…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하근찬

박만도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마중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급한 마음에서 평소보다 빨리 읍내에 도착했다. 장터에서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기차역으로 갔다. 대합실에 앉아 잘려나간 왼팔을 보며 지난 일을 회상한다. 일제 때, 그는 강제 징용되어 남양의 섬으로 갔다. 그 섬에서 산을 깎아 비행장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다. 격납고를 파던 굴로 피신했으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왼팔을 잃었다. 불길한 기억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하고 아들을 만난다. 진수는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만도는 극도로 속이 상했다.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국수를 사 먹이며 평정심을 되찾아간다. 만도가 소변볼 때, 진수가 고등어를 들어준다. 오른손 밖에 없는 만도에게 양손이 다 있는 진수의 도움이 요긴하다.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외다리 진수가 목발을 짚고 건너기는 무리다. 만도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아버지의 고등어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국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전쟁으로 인해 2대가 소중한 몸을 손상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기가 막힌다. 왜 죄 없는 사람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하필 그들 부자에게 연속적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 책임 있는 대상을 찾아내어 복수할 생각을 한들 그걸 탓할 수 없다. 복수까진 아니더라도 배상 정도는 주장할 수 있을 터다. 물러터진 사람이라면 실의에 빠진 채 퍼질러 앉아 팔자 탓만 할 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간혹 본다.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가 왼팔을 잃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양반을 욕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 탓을 하지도 않았다. 섬을 공습한 미군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유사한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은 아들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 아무나 잡고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 하지만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아들을 위로하며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난관을 극복하려 혼자 몸부림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상부상조하면 장애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서로에게 팔과 다리가 되자고 한다. 팔 없이 꿋꿋이 살아온 아버지를 지켜본 아들이기에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소변을 보면서 느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돌아다니는 일, 아들은 집에서 하는 일을 하면 된다. 서로의 결손을 채워주는 삶이다. 아버지의 분노와 절망감이 애정과 희망으로 바뀌고, 아들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자신감과 용기로 전환된다. 역사적 비극도 신뢰와 배려로써 협력하고 화합한다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휴머니즘이 물씬 풍긴다.

한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만신창이가 된 채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민초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지도층에게 일갈하고 있다. 민초의 거친 삶을 보고서, 양심이 있으면, 제발 정치 좀 똑바로 해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잔잔하게 꾸짖는다. 죽창 들고 나서는 사람보다 인내하고 삭이는 사람이 실상 더 고수다. 잘못된 것을 긍정과 관용으로 받아치는 작가의 노련함이 행간에 숨어있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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