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비장 견훤 전주에 궁궐을 세우고 후백제 건국
고려 왕건을 압박하는 한편 신라의 성을 공격해 영토를 넓혀 후삼국의 구도를 형성하면서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반세기에도 못 미치는 시간에 후백제는 고려에 항복하면서 후삼국통일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며 멸망했다.
삼국유사는 후백제 견훤을 길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연은 견훤을 뛰어난 인물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지렁이 아들로 은근히 비하하며 상대적으로 고려 왕건을 훌륭한 인물로 추켜세우고 있다. 후백제 역사는 견훤의 일대기로 기록된다. 후백제 건국, 고려와의 전쟁, 후백제 멸망 세 단락으로 나누어 후백제 견훤을 알아본다.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867년에 태어났다. 본래 성은 이씨였으나 후에 견을 성씨로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다가 885~887년에 사불성(지금의 상주)에 웅거하여 스스로 장군이라 칭했다. 아들은 넷으로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견훤은 지혜와 책략이 많아서 출중하게 뛰어났다.
이제가기 기록에는 진흥대왕의 비 사도의 시호는 백숭부인데 그녀의 셋째 아들은 구륜공이고, 구륜공의 아들은 파진간 선품이다. 선품의 아들 각간 작진의 처 왕교파리가 각간 원선을 낳으니 이 사람이 아자개다.
또 고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옛날에 광주 북촌에 사는 한 부자가 딸 하나를 두었는데 태도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밤마다 저의 침실에 와서 관계를 합니다” 하니 아버지가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고 했다.
딸이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자 실은 북쪽 담장 아래에서 찾았는데 바늘은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 후 임신하게 되어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고 일컬었다.
아이가 장성하자 체격과 용모가 웅장하고 기이했으며 뜻과 기품이 활달하고 비범했다. 군인이 되어 서울에 들어왔다가 서남쪽에 가서 바다를 지킬 때는 창을 베고 적을 기다렸다. 그 기개가 항상 군사들의 앞장이 되니 그 공로로 비장이 되었다.
당나라 소종 경복 원년(892) 신라 진성왕 6년에 총애받은 신하가 왕의 곁에 있으면서 은밀하게 국권을 농간하니 기강이 문란하고 해이해졌다. 거기에 기근이 더해 백성들은 떠돌아다니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견훤은 서쪽으로 순행해 완산주에 도착하자 그 주의 백성들이 환영하며 위로했다. 인심을 얻은 것이 기뻐서 견훤은 “백제가 나라를 세운 지 600여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서 수군 13만 명이 바다를 건너고, 신라 김유신이 휩쓸어 황산을 넘어 당나라 군사와 합세해 백제를 쳐서 멸망시켰다. 도읍을 세워 묵은 원한을 풀겠다”면서 스스로 후백제 왕이라 칭하고 관직을 설치해 직책을 나누었다. 이때가 당나라 광화 3년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다.
견훤은 상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들에서 일하다가 점심을 먹고 잠깐 졸았는데 마당 우물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몸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라면서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하늘을 향해 천둥소리처럼 포효했다.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이어 태기가 있더니 낳은 아이가 견훤이다. 아자개의 첫 번째 아들이다.
견훤은 어릴 때부터 재치가 뛰어나고 체격이 크며 힘이 장사였다. 나이 열여덟에 무과에 급제해 전쟁터를 누비기 시작했다. 전쟁터에서는 장군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진으로 뛰어들어 맹수같이 휘저어 아군의 병사들은 크게 다치는 일도 없이 쉽게 승리하곤 했다.
견훤은 뛰어난 전술과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비장이 되었다. 진성여왕이 즉위하고 곧 나라가 어지러워지면서 곳곳에서 도적이 들끓기 시작했다. 삼년을 연이어 흉년이 들고, 매관매직으로 부패한 관리들이 설치면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견훤이 전주에서 민심을 교란시키며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정을 일삼는 현령을 숙청하고, 임시 현령의 직을 맡아 보살피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강물이 점점 끓어오르더니 배가 녹아 없어지고 자신의 몸이 용이 되어 전주성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거대한 이무기 두 마리를 잡아먹고는 아홉 개의 알을 낳았는데 모두 용으로 바뀌어 서로 싸우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러자 전주성이 폭삭 내려앉더니 사방으로 불길이 번져나갔다.
견훤이 승복 입은 사람과 성으로 돌아왔다. 만찬이 끝날 무렵 책사 최승우가 다시 견훤 앞에 엎드려 꿈을 풀이하며 “왕이 될 꿈이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잘 다스려야 나라가 오래갈 것입니다”라며 함께 일을 도모할 것을 청했다.
고구려 땅에서도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왕건이 뒤를 이어 고려라고 나라 이름을 고치고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견훤과 곳곳에서 맞부딪쳤다.
견훤은 지혜롭고 용맹스러웠다. 한편 책사 최승우의 말에 귀를 기울여 대부분 그의 말을 따랐다. 최승우는 가까이는 물론 먼 훗날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 그의 전술과 책략에 견훤도 깜짝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견훤은 부인이 여럿이었다. 아들도 아홉 명이나 되었다. 모두가 성장하면서 장군이 되고, 지혜롭기도 하여 가까이에서 견훤을 보좌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