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아야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 ‘마스크 가지고 장난질인가’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SNS를 떠돌던 ‘마스크 유통 특혜 의혹’이 청와대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의혹이 양지로 나왔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생명을 담보로 선거자금을 마련하려 한다는 억측마저 횡행했다. 이와 관련된 얘기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급속도로 항간에 퍼졌다. 그 뼈대는 대충 이러하다. “‘지오영’이란 약국 유통업체가 공적 마스크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 ‘지오영’ 대표는 영부인, 손모 의원 등과 연루되어 있고, 그 남편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영홈쇼핑의 대표이자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이다.”

공적 마스크의 유통을 따낸 곳은 ‘지오영’과 ‘백제약품’이다. 조달청 계약단가는 900원이고, 약국 공급가는 1,100원이다. 하루 평균 560만 장 공급을 가정하면 두 회사의 하루 마진은 대략 11억 2천만 원 정도다. 땅 집고 헤엄치기다. 이 불경기에 꿀이다. 경쟁 입찰도 없이 수의계약으로 큰 건수를 줬으니 그 자체가 엄청난 ‘특혜’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짜뉴스의 엑기스이자 진앙이다. 코로나19로 숨도 마음 놓고 못 쉴 지경인데 재난을 돈벌이 기회로 삼는 자들이 준동한다는 사실은 정말 빈장 상하는 일이다. 그 와중에 빈틈과 개연성을 보였다. 그럴듯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덧붙여졌다. 한 다리 건널 적마다 살이 붙어 튀겨졌다. ‘그 엄청난 특혜를 그냥 줬을 리 만무하다. 정치권력이 붙었을 거야. 결론은 버킹검이다.’ 최종 종착지는 그럴 법하고 만만한 권력자로 낙착되게 마련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도 한몫했다.

청와대는 공적 마스크 유통을 맡고 있는 ‘지오영’ 대표와 영부인이 특수관계라는 의혹에 대해 “명백한 가짜뉴스로 지오영 대표와 영부인은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공적 마스크 판매처 선정 시 공공성과 접근성을 최우선 고려했고, 유통경로를 효과적으로 추적·관리하고 각종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관리·유통의 필요성과 전국적 약국 유통망과 전문성을 가진 유통채널 선정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독점적 공급권은 부인했다. 유통과정의 효율성을 고려해 민·관 4개 업체·기관이 상호 협력해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해명했다.

효율적인 관리·유통의 필요성 때문이라는 정부 주장은 변명치고 너무 옹색하다. 그렇다면 경쟁 입찰이 설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효율성 논리는 경쟁 입찰을 부인하는 논거로서 빈약할 뿐더러 청산해야 할 행정편의주의에 다름 아니다. 전국 유통망과 전문성을 가진 유통채널 선정의 불가피성도 수의계약의 당위성으로 받아들이기엔 한참 거리가 있다. 국가적 재난극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공공성과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해명도 추상적 재량적 개념을 그 기준으로 내세워 두루뭉술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위기를 모면하려한다는 인상을 준다. 편의상 두 개 업체를 선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독점적 공급권은 아니라는 말은 궤변일 뿐이다. 유통과정의 효율성을 고려해 민·관 4개 업체·기관이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란 말은 두 업체에게 공급권을 준 사실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공공성과 접근성을 최우선 고려한다면 각동 주민자치센터를 거점으로 통·반장과 관변단체를 활용하여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약국, 우체국, 금융기관 지점이나 편의점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국가재난 대처 물품을 개인 부담으로 전가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회피다. 초기대응에 실패함으로써 국가적 재난으로 키운 점을 문책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는다. 죄 없는 국민이 마스크 살 돈이 없어 병에 걸리는 상황은 정의가 아니다.

영부인과 손모 의원이 뻑 하면 등장하는 작금의 상황도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신뢰가 안 간다는 의미다.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 논란에서 연동형비례제의 장기집권 목적이 드러나고 있고,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도 법무부의 수사개입 등으로 당리·정략이란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현금복지 확대가 포퓰리즘 매표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다. 신뢰가 없으면 사소한 언행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따른다. 의심 받을 행동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특정업체에 독점적 공급권을 준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화를 스스로 불러들였다. 배 밭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 법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첫 번째 가치가 신뢰라는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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