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네거리에서…고맙다 힘낸다 그러나 분노한다

발행일 2020-03-02 14:40: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문정화 신도청권 취재팀장


설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 받은지 한 달도 채 안 됐다. 그런데 고향 마산과 서울 등지에서 2주째 안부를 걱정하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일흔 살 언니는 매일 전화를 걸어 나의 상태를 확인한다. 지난 달 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31번째)가 나온 이후 대구와 청도 대남병원을 비롯한 경북 전역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발생 뉴스가 전국을 도배하니 주말마다 대구와 경북 안동을 오가는 동생이 걱정된 것이다.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친구까지 “코로나로 대구가 난리구나. 각별히 조심해. 걱정이다. 빨리 잠잠해져야 할텐데”라며 톡을 보내왔다. 친구가 태평양 건너에서 톡을 쏜 날은 국 내 첫 코로나19 사망자 발생 소식이 외신을 탄 날이다. 그로부터 열 하루가 지났다. 사망자 26명, 확진자 4천212명(3월2일 0시 기준·질본). 대구에서만 3천81명, 경북은 624명이다. 81개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입국을 제한한다는 소식도 날라들고 있다.

경북에서는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된 채,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국민(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 환자·102명)이 119 응급차로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산대병원, 충남대 병원 등 전국 17개 병원으로 실려나갔다.

이들 중 7명은 숨졌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 인사도 못한 채 주검이 돼 버렸다. 숨질 때마다 “폐쇄된 병동에서의 오랜 집단 생활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져 있어 이번 코로나19에 취약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한 줄 브리핑이 끝이다.

나머지는…. 경북도 방역당국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동국대경주 병원과 타지역 병원으로 나간 나머지 환자들은 모두 중증 환자들”이라고 했다. 자고 나기 무섭게 날마다 갱신하는 경이적으로 확진자 카운트에 관심이 쏠리는 동안 이들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닷새 전부터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 잇따른다. 확진을 받고도 병원을 배정받지 못하거나 판정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국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평소 기저질환을 앓아왔던 노약자들이다. 이들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제대로 했을리 없다. 이 무슨 숭(흉)한 상황이란 말인가.

어제 경산에서는 태어난 지 45일 된 아기도 감염됐다. 바이러스와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이른 데 말이다. 아기는 국가지정 음압병상이 있는 동국대경주병원에 확진 부모들과 함께 입원 치료중이다.

알다시피 코로나19는 칠곡과 예천, 청도, 경산 등 장애인과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을 하는 시설 곳곳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대구 인근 경산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들 시설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안다. 위기는 가진 것이 없는 자, 신체적·정신적으로 약한 자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타격한다는 것을. 그래서 위기 예방 책무를 지닌 자와 집단이 쓸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

81개국이 대한민국 국민에 빗장을 걸어 잠궜다. 대한민국 우한폐렴 사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의 나라에서 발생한 감염병을 제대로 막지 못해 자국민의 생명을 이렇게 위협하게 만드는 나라가 정상적인가?

병적으로 더 자주 손을 씻고 바깥에서만 써왔던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하루종일 실내에서 쓰고 있다. 순간적인 미열에도, 기침에도 ‘혹시?’라며 스스로를, 타인을 의심한다. 헬스장도, 경로당도, 목욕탕도, 무료급식소도 갈 수 없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하고 장사도 할 수 없다. 일상들이 아니다. 2주일을 견뎠는데 앞으로 2주일을 더 견뎌야 한단다.

감염원은 오늘도 흘러 들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뒤숭한 중앙 공무원은 ‘대구 코로나’, ‘대구 폐렴’이란다. 전방에서 귀한 국민의 안위가 달린 사태를 다루는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모욕하는 발언도 서슴없이 나온다. 그러나 국민은 안다. 이 사태가 ‘중국발 우한 폐렴’사태이고 누구 때문이라는 것을.

수원에 사는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힘내요, 그리고 헤어드라이기 온도가 30도이니 퇴근 후에 외투 등 곳곳을 말려요. 그러면 바이러스가 죽을 것”이라는 처방전까지 덧붙였다. 답을 보냈다 . “고맙다. 힘낸다. 그러나 …분노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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