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역

박해수

촛불을 들고 / 하늘역을 어리둥절 / 찾아 갔습니다 / 남루한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 먼저 도착해 있다고 / 우선 나를 찾았습니다 / 하늘역에는 / 부모와 동기간도 없고 / 만남과 이별도 없고 / 영원히 사는 것뿐이라고 / 하늘역에는 고통스런 시를 쓰지 않아도 / 좋은 시들이 많은 것이라고 / 내 마음을 몸을 하늘역처럼 살라고 / 하늘역을 놓았다고 / 촛불을 들고 나와 / 어리둥절 찾지 않아도 되니 / 몸과 마음속에 하늘역을 / 만들어 놓아라고 / 자꾸만 네 마음에 / 하늘역을 만들어 놓아라고 / 네 시가 가는 곳이 바로 / 하늘역이라고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북랜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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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서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이 눈부시다. 근심과 걱정이 포말로 산산이 흩어진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바다에 누워’ 생각마저 잊는다. 해 저문 노을이 손짓한다. 일곱 색깔 무지개가 하늘까지 펼쳐진다. 하늘길이다. 별들도 쉬어간다는 멀고먼 아득한 그 길은 시를 껴안고 울면서라도, 시를 품고 무릎을 꿇어가면서라도, 기어코 가야만 하는 길이다. 시인은 ‘맨발로’ ‘걸어서 하늘까지’ 갈 생각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그래서 가끔 무작정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건지 모른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데 가야할 곳을 알 리 없다. 그냥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기차역을 보면 역마살이 돋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시인은 간이역을 주목한다. 간이역에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찾아낸다. 간이역마다 시라는 부적으로 오아시스를 놓았다. 목마른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줄 시인의 몸부림이자 기도였다. 간이역은 간이역으로 이어져 하늘역에 닿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정체성과 그리움을 찾아 촛불을 들고 하늘역을 찾아간다. 어리둥절 뭐가 뭔지 모르는 하늘역에서 우선 자신의 참모습을 본다.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먼저 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부모와 동기, 만남과 이별도 없다. 영생만 있다. 살아생전 남루한 모습 따위의 가난과 고통은 인간사의 헛된 기억일 뿐 하늘역엔 의미 없는 무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 없는 하늘역엔 고통을 승화시킨 시를 쓰지 않아도 좋다. 시인은 오직 밝고 환한 시만 쓴다. 시인도 독자도 모두 행복하다. 고통을 나눌 일은 없고 기쁨을 함께 할 일만 남아있다.

하늘역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는 일이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고 보면 촛불을 들고 나와 어리둥절 찾지 않아도 된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만들어 놓으라고 시인은 제안한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은 시인이 쓴 시는 하늘역으로 향한다. 하늘역을 놓은 시인의 시는 구원의 복음이자 천국행 티켓이다.

간이역마다 마련해 놓은 시비는 하늘역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표지석이다. 시인의 인생역정은 하늘역을 찾아가는 행군이었고 시인이 남긴 시는 그 행로를 알리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이제 간이역으로 갈 일만 남았다. 간이역 시비에서 시를 읽고 기차를 타면 하늘역으로 간다. ‘죽도록 그리우면 / 외로우면 기차를 타라’고 노래하던 박해수 시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천상의 하늘역에서 시를 품고 있을 박해수 시인이 그립다. 지금 우리는 위로해줄 시인이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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