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익명의 섬

이문열

~억제된 성이 있다면, 필요할 지도 모를~



… 나는 오지의 어느 작은 국민학교에 갓 부임한 여교사다. 타성들의 유입이 별로 없는 동족마을 옆에 학교가 있다. 그 마을엔 깨철이란 근본 없는 사십대 사내가 떠돌고 있다. 그는 일 없이 마을을 어슬렁거렸으나 그 마을에서 하루 세 끼 밥과 잠자리를 얻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마을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묵인되고 있다. 어떤 성적인 역할이 그 배경이라는 짐작을 어렴풋이 한다. 내가 당하고 난 후에야 그의 존재 방식과 배경을 확실히 깨닫는다. 병신 취급을 받는 그는 마을 아낙네들에겐 ‘익명의 섬’으로서 억제된 성의 비밀스런 배출구다. 그는 여인들이 언제 자기를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안다. 절제와 함구라는 룰은 그를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그는 모든 마을 아낙네들의 연인 또는 잠재적 연인이다. 그 마을 남자들이 묵인하는 이유는 얄팍한 자존심과 영악한 계산 때문이다. 그를 병신이라고 우기는 편이 속 편하다. 도덕과 인습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그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심리 같은 것도 잠재한다. 그에게 어떤 금도가 존재한다. 젊은 층을 피하는 것과 동일 상대와 다시 관계하지 않는 것이다. 말썽 없이 롱런한 비결이다. 그 마을을 떠나던 날, 후임자에게 깨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만둔다. 분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억제된 성이 있다면, 그녀 역시 그 ‘익명의 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체된 농경사회는 통상 씨족사회다. 마을사람들이 아재고 아지매며 사돈이다. 사소한 집구석 사정은 물론 부엌의 숟가락까지 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편안하고 아늑하기도 하지만 인습이나 혈연에 얽매여 숨 막히는 면도 많다. 모든 게 유리알 같은 공동체에서 비밀이나 프라이버시는 존재할 수 없다. 소설 「익명의 섬」은 그러한 동족부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관습과 도덕의 속박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끔 탈선 욕구가 찾아온다. 일종의 슬럼프다. 꽁꽁 얼어버린 호수에도 숨구멍이 존재하듯이 인습과 윤리에 꽁꽁 묶여 사는 동족마을에도 탈출구가 필요하다. ‘익명의 섬’이다. 남자들에겐 술이란 친구가 항상 옆에 있고 사당패가 숨통을 틔워주는 해방구로 작용한다. 여자들에겐 신체구조가 수용적인데다 임신이란 복병이 상존하고 정조의무마저 강요받는 처지라 선택지가 좁다. 그런 상황에서 깨철이의 존재는 기막힌 장치다. 지난 시절엔 ‘익명의 섬’ 역할을 하는 떠돌이가 마을마다 드물지 않았다. 비난받을 만한 존재이긴 했지만 우연 아닌 우연으로 생겨난 필연이었다. 비루한 존재로서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시신을 만지고 염하는 등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필요악처럼 묵인되었지만 금기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묵시적 의무다. 절제와 비밀 준수. 혹시라도 그 선을 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제거되기 마련이다. ‘익명의 섬’은 양날의 칼이다.

현대는 인터넷과 SNS로 대표되는 정보화사회다. ‘익명의 섬’이 ‘익명의 바다’에 잠긴 모양새다. ‘익명의 바다’도 독과 약이 공존한다. 절제와 배려는 익명의 바다에 가라앉은 상태다. 최소한의 룰조차 지켜지지 않아 익명의 바닷물에 빠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지만 자유와 책임은 아직도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익명의 섬’이 큰 무리 없이 수용되었듯이 ‘익명의 바다’도 합리적 절제와 금기의 착근으로 보편적 행복추구에 기여하는 무대가 되길 기대한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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