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문향만리…백담에 이르다

백담에 이르다

김미정

백담에 이르기 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사치도 나머지도 아닌 눈물이라 괜찮다던 계곡이 계곡으로 이어져 당신께로 이어져.

노을이 삼켜버린 붉은 울음 따라서/ 느릿하게 풀어놓은 산 그림자 따라서/ 당신이 어루만져주던 바람 기억 따라서.

백담에 이르고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돌처럼 단단해져 물살을 이기라던/ 터널을 빠져나온 어둠, 물소리로 여울져.

-『대구시조 23호』(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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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고요한 둘레』『더듬이를 세우다』『곁』(고요아침, 현대시조 100인선 82, 2017) 등이 있다.

‘백담에 이르다’는 다소 직정적인 시다. 네 번에 걸쳐 당신이 등장한다. 그 부름에는 애절함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 백담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계곡으로 보아도 좋겠고, 화자가 생각하는 어떤 백담이어도 된다. 그곳이 어디인지가 그리 중요치 않다. 세 수의 시조가 의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텍스트 자체로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감상은 가능하다.

백담에 이르기 전 당신을 생각했는데 사치도 나머지도 아닌 눈물이라 괜찮다던 그 말을 떠올리면서 계곡이 계곡으로 이어지면서 다시금 당신께로 이어져 있음을 반복해서 주지시킨다. 백담 계곡은 계곡으로 연이어지면서 종국에는 당신께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그 이어짐은 또한 노을이 삼켜버린 붉은 울음 따라서, 느릿하게 풀어놓은 산 그림자 따라서, 당신이 어루만져주던 바람 기억 따라서이다. 따라서가 둘째 수 각장마다 각운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도 의도적인 시적 장치이고, 그리움의 깊이를 더하는 데 한 몫을 한다. 이와 같은 미완성 문장의 리드미컬한 되풀이는 시의 맛을 한껏 고양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제 화자는 백담에 이르고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그에게 돌처럼 단단해져 물살을 이기라고 당부했다. 터널을 빠져나온 어둠이 물소리로 여울질 무렵 당신의 그 간절한 이야기는 심금을 울린다. 화자는 자신의 눈물을 어여삐 여긴 당신이 어루만져주던 바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따사로운 온기를 간직한 채 마침내 백담에 이르렀고, 백담에서 사랑의 가없음을 기리며 마음을 다독이고 다진다. 첫수 종장 끝마디 이어져가 끝수 종장 끝마디에서 되풀이 된 것도 효과적이다.

시인은 ‘동행’이라는 단시조에서 속도보다 더 값진 함께 그린 그림자를 면밀히 살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휠체어를 돌리는 정경과 바큇살 사이로 퍼지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더불어 가는 길, 더불어 사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노래하고 있다. 또한 ‘배후’라는 시조에서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요한 탐색을 보인다. 배후는 정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어떤 일이나 행동을 조종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부정적인 뜻이 크다. 궁금한 것들은 늘 뒤편에 도사리고 있어서 그 궁금증은 증폭된다. 조종당한 듯한 순간마다 몸의 각도가 뒤틀린다. 또한 등으로 울고 웃던 흔적과 감춰둔 허물까지도 뒤틀린다. 무작정 기다리던 당신의 등 뒤에서 밀어낸 걱정마저 땀방울에 휩싸일 때 가만히 물러서지 않는 무뚝뚝이 돌림판이기도 하다. 손닿지 않는 그곳 물무늬가 차갑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배후의 냉혹한 시선을 뜻한다.

이처럼 김미정은 연륜의 깊이에서 오는 존재론적 성찰을 육화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인간관계와 상생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천착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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