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왜 ‘자영업자 정당’ 꿈틀대나

발행일 2020-02-25 15:15:0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왜 ‘자영업자 정당’ 꿈틀대나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코로나19가 대구·경북 지역을 덮쳤다. 이후 일상생활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시도민들의 ‘자발적인’ 자가격리다. 이웃들에게,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배려에서 출발했다.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고 서로 간의 접촉을 차단하고 나섰다.

대구에서 외식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 자발적인 자가격리에 들어간 지 오늘로 벌써 6일째다. 업장 입구에 ‘임시휴업’ 안내를 써 붙이고 문을 닫았다. 언제까지 휴업인지는 아예 안내조차 하지 못했다. 이게 어디 외식업소만의 문제일까. 그 사이 미용실, 카페 뿐 아니라 약국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휴일도 없이 온가족이 매달려 일해 오다가 언제까지일지도 모른 채 기약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처음 2, 3일은 생계걱정 뿐이었다. 그 다음 며칠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며 보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랄까.

그러다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그 많은 정당에서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줄만한 정당이 있을까. 없다면 이들을 위한 정당, 가칭 자영업자당(黨) 창당이 가능할까.

25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39개다. 여기다 등록된 창당준비위원회도 30개나 된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 정당 중에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만한 정당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 게다. 근래 들어 ‘자영업자당’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확산방지에 모든 역량을 쏟을 때다. 매일매일 확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공무원들, 방역 관계자들을 격려할 때다. 또 지금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만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도, 직장인도, 일용직도, 최저임금 시급을 받는 알바생들도 어려운 시기다. 분명한 것은 이럴 때 일수록 자영업자들처럼 힘없는 약자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정당이란 어차피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결사체 아닌가.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당사를 봐도 이런 특정 목적의 정당들이 있어왔고 성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맥주당’이다.

1991년 폴란드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맥주애호가당’은 37만에 가까운 표를 받아 16명의 의원을 배출해냈다. 구 소련의 잔재를 청산할 목적으로 보드카 대신 맥주를 마시자는 일종의 불매운동도 벌였다. 그 덕에 보드카 소비량은 많이 줄었고 맥주문화는 품질이나 생산량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 폴란드가 세계맥주생산량 10위권에 드는 국가가 되었다.

1990년대는 폴란드 외에 각국에서 맥주당이 창당되었다. 체코의 ‘맥주친구당’,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맥주애호가당’, 우크라이나의 ‘맥주애호가정당’, 미국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정당’에 이어 노르웨이에서는 ‘맥주연합당’이 창당되기도 했다.

이런 ‘맥주당’보다는 그래도 자영업자당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실제로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시도되기도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상공인연합회가 '정치참여 금지' 조항 정관변경을 통해 정치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정관 삭제 승인권한을 가진 중소벤처기업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정치세력화 열망은 또다시 표면화될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한발 느린 정부 대처를 보며 걱정과 분노를 삼키며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권영진 대구시장도 중국인 입국 금지는 때늦은 감이 있다고 했을까.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라곤 시민들에게 2주 동안 외출을 자제하고 이동을 최소화해달라는 요청이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겐 최소한 2주일이나 더 휴업을 연장해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수십만원의 고정비용을 감당해야하는 이들의 생계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어느 순간 폴란드 맥주애호가당처럼 자영업자당이 돌풍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사정은 그만큼 절박한데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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